하동, 사천과 남해는 국회의원 선거구가 하나인 이웃이다. 서울에서는 재경경남도민회를 통해 오래전부터 향우들끼리 교류하고 있기도 하다. 30년의 역사를 지난 남해신문에 인근 지역 출신 향우들을 소개해 남해 향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가 있어 경남도민회 행사에서 몇 번 만나 친해진 사천시 향우를 방문했다. 그는 사천시 축동 출신으로 서울시 종로구에서 대한의수족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승호(70) 소장이다.

이승호 소장은 1979년 대한의수족연구소를 설립해 41년을 장애인을 위한 의수족 제작에 매진해왔다. 10회 세계 장애인올림픽 보장구 수리소 임원 역임, 독일 OTTO BOCK사 보장구 기술교육 수료, 미국 HOSMO사 보장구 기술교육 수료, 한국방송대 행정학과 졸업, 대만 덕림의지 보장구 기술교육 자격증 취득, 일본 아가베대학 명예사회학 박사,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수료, 한국보장구협회장 역임, AMERICAN ZEN COLLEGE 대학원 졸업, 영국 DORSET ORTHOPAEDIC, 한국학술진흥재단 박사 등의 관련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한의수족연구소 대표이면서 한국 의지보조기학회 이사, 국제 의지보조기학회 한국지회 이사를 맡고 있다.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 의료보장구학과와 한서대 의료보장구학과에서 특강을 했었고, 지구촌 나눔운동 에티오피아 의수족지원사업 등의 봉사활동으로 국민포장, 국민훈장 석류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 서울시장 표창 등을 다수 수상했다. 저서로는 <내일은 희망> <건강 상식 건강미신> <신체발달과 대체에너지>를 펴냈다.

이 소장은 지난 41년간 한결같은 장애인 사랑으로 자체기술로 특허를 받고, 전문가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 의수족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보장구 개발과 연구에 정진한 결과 이제는 비장애부위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미려하고 착용감이 편안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전자의수를 착용하면 가정용품은 물론 컴퓨터까지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 소장이 의수족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이웃의 형이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팔을 잃고 세월을 보내다 비관하여 자살한 적이 있었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사이라 무척 마음 아파서 이렇게 고통 받는 분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마침 친척분이 의수족 업종에 계셔서 진로를 결정했다. 처음엔 허드렛일을 하다가 정식으로 기술을 배워 군복무를 마치고 28세가 되던 해 서울시 종로구 원남동 지금 자리에 조그만 의수족가게를 열었다.

이 소장은 최근 외국인노동자들의 산업재해와 장애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저소득 장애인들에게 손발을 제작해준 공로로 지난 2000년 제20회 장애인의날에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평생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듣고 무료로 의족을 마련해 준 것을 시작으로1000여명의 장애인들에게 손발을 선사했다.

이 소장은 아직도 19804월 어느날 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고 말한다. 서울 종로구 원남동사거리 한쪽에 의수족 만드는 가게를 차린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가계 밖에서 두리번거리는 60대 여성과 젊은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아들과 함께 서울구경을 하고 난 여성은 진열대에 놓인 석고 인공팔을 말없이 바라보다 얼마냐고 물었다. 왼쪽 어깨 밑 부분이 헐렁한 여성은 가격이 비싸다는 말에 작은 한숨만 쉬면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들 결혼식장에 성한 팔을 하고 가고 싶은 그 여성의 마음을 헤아려 이 소장이 돈 안받고 한번 만들어 드릴 테니까 치수부터 제자고 했더니 망설이다 팔을 올려놓았다. 무료로 인공팔을 해준 이 소장은 정말 기뻤다고 한다. 인공팔을 선물받은 그 여성은 가을만 되면 들깨, 참기름 등을 매년 보내왔다. 이 소장은 인공팔 값보다 더 많은 선물을 받고 있다며 흐뭇해 했다.

이 소장은 이 일은 장애를 극복할 의지와 희망을 불어 넣는 직업이라며 전자의수의 의료보험 보장을 촉구한 지 10여년이 됐다. 이제 3D의수를 대중화시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1970~80년대 국가경제를 급속하게 건설하는 과정에서 팔다리를 잃은 사람도 많아졌다. 이 소장은 손님 중에 상이군경 말고도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남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대부분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험한 일을 하다가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수족 하나를 맞추려면 지금 돈으로 300~400만원이 들었다. 의수족을 만지작거리다 돈 때문에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소장은 1980년 그 여성에게 인공팔을 무료로 해준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900여명에게 새로운 팔과 다리를 대가없이 달아주었다. 201511월에는 한·베트남문화교류협회의 요청으로 베트남인 4명에게 의수족을 만들어줬다. 이 소장은 팔과 다리를 새로 다는 그 순간 얼굴에 나타나는 벅찬 표정을 보는 건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감동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지난 20114월에는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의수족을 만들어준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현재 국내 의수족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통하는 이 소장은 오늘도 업을 이어받은 아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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