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사랑하는 한 사나이가 있다. 호방한 매의 날갯짓에 반해버린 사나이. 그의 이름은 권재명. 경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학생들과 동고동락을 나누다 지난 2019년 8월 정년퇴직을 한 이후로는 아예 매 사랑에 전념키로 한 사나이. 매가 좋아 그저 매와 함께 생활하기 적합한 곳을 찾다 찾다 이동면 초양마을의 한 집을 수소문해 가족이 있는 진주를 떠나 홀로 매 두 마리와 함께 사는 사람. 그를 찾아 초양들판으로 달려갔다.                                                        <편집자 주>

매를 모시며 사는 남자

그가 알려준 주소대로 찾아가는 길은 운전이 미숙한 사람은 중간에 내려 걸어가야 할 시골길이었다. 큰 양철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서 처음 만난 풍경은 생경했다. 
한 사나이가 매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었다. 그는 ‘주갈치’였다. ‘주갈치’란 남해에서 ‘매를 부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또 이러한 남해의 주갈치는 ‘매사냥’이라는 행위를 ‘매놓기’라고 부른다. 주갈치 권재명 씨는 2004년부터 매사냥 활동에 입문,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이수자 9호로,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초대 부회장과 한국민속매사냥보존회 초대 부회장을 각기 역임했다. 현재 ‘남해매놓기보전회’에서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권재명 씨는 “매사냥이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 무렵에 나타난 잘못된 신조어”라며 “남해지역에서 매를 다루던 노인들을 9년간 찾아다니며 발견한 사실은 남해 노인들은 아무도 ‘매사냥’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매놓기’라는 말을 쓴다”며 “매를 놓는다는 것은 맹금류를 생포해 훈련 시켜서 꿩이나 토끼 등을 사냥하고 이를 관리, 사역하고 사냥철이 끝나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일컫는 말”이라면서 민속에 관한 여러 책에서도 매를 이용해 사냥하는 풍속을 ‘매사냥’이라 일컫는 바람에 ‘매놓기’란 말이 대두되지 못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매처럼 자유롭고 싶은 권재명 씨의 ‘매’사랑 사연이 깊다. “진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진주 망경동 집에서 학교인 대아고까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늘 책가방이 참으로 무거웠다. 유난히 책가방이 무겁다 느꼈던 한 날, 문득 흑백텔레비전에서 보던 몽골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몽골사람들은 검독수리를 이용한 사냥을 하는데 그 장면이 떠오면서, 이 무거운 책가방을 검독수리가 들어주면 어떨까 상상했었다”며 입가에 미소를 띄는 권재명 씨. 이어서 그는 “그로부터 훨씬 더 지난 2004년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매놓기 풍속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대전까지 찾아가 ‘매놓기’를 가르쳐달라고 읍소했고 그 길로 매에 빠져버렸다”고 실토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매 사냥’

한국 최초로 공모직 교장으로 부임하게 된 이영주 설천중 교장의 추천으로 설천중 국어교사로 오게 된 게 2010년. 그 당시 남해 발령을 흔쾌히 반긴 이유 또한 ‘매’가 컸다. ‘남해에 매를 붙들어서 꿩을 잡는다는 어르신이 계신다’는 소문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그때부터 9년간 남해지역의 ‘매’를 다룬다는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동영상으로 채록해가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남해의 매’의 역사적 발자취를 담아 기록한 한 권의 보고서 같은 책이 바로 2019년 7월 30일자로 발간한 ‘주갈치를 찾아서’이다. 그렇게 이제는 고인이 된 고찬옥 옹을 만나고, 이어 윤희덕, 홍점표, 박명원 옹과의 수차례 면담과 취재를 거쳐 남해지역의 생생한 ‘매놓이’ 현장을 담아냈다. 거기다 2016년 8월에는 권재명, 안동규, 김원태 등 3인이 남해매사냥보전회를 만들자고 합의해 창립총회 준비에 착수하고 그 후 설천면민체육대회장에서 매 시연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교육지원청 사업의 일환이었던 ‘꿈빛학교’에서는 ‘남해매방’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면서 ‘동물의 생태습성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워가기도 했다.

‘매사냥은 4000년 이상 지속되어 왔고 인간과 조류 사이에 맺어진 가장 오래된 관계 중 하나다. 매사냥은 국가적 배경이 달라도 보편적 가치, 전통, 기술을 공유한다’는 취지의 유네스코 등재문은 나라가 달라도 매사냥의 전통과 기술은 그 맥을 같이 하기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총 11개의 나라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었던 배경을 보여준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니 당연히 국가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화재청에서는 4년째 심사 중에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권재명 씨.
그는 “임금님의 하사품으로 쓰이기도 한 우리나라에서 매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매놓기’는 위로는 왕족부터 아래로는 궁벽한 시골의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에서 다양한 양식과 목적으로 누리던 문화”라고 설명하며 “현지 토박이마저도 그런 문화가 있었지 하며 쉬이 치부하던 남해의 무형문화를 발견해내는 기쁨이 크다”며 “매 다리 붙잡고 놀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며 미소짓는다. 오늘도 자신의 양식은 뒷전인 채 털갈이하느라 여름나기에 여념이 없는 매를 위해 최고의 먹이를 진상하는 그를 보니 교감으로 시작해 교감으로 완성한다는 자연의 섭리가 떠오른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