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들어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에 있다” 

9년전 남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익주(朴翊住, 89세) 전 국회의원이 했던 말이다. 당시에 박 전 의원은 오른팔에 대상포진 통증이 있는 것 외엔 건강한 모습이었다. 부인인 김복희 여사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박 전 의원의 얼굴엔 행복과 편안함이 배어 있는 표정이었다. 
남해군 출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창선면과 삼천포를 잇는 창선ㆍ삼천포 연륙교 건설의 승인을 받아 냈던 박익주 전 국회의원이 지난 4월 29일 영면에 들었다. 
아들인 박철균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익주 전 의원은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 특3호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이 세상과 이별했다. 5월 1일 오후 1시에 발인해 서울국립묘지 장군묘역에 영원히 몸을 뉘었다. 

박익주 전 국회의원은 생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해와 하동을 발전시킬 청사진을 다 세워놨는데,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는다”고 한 적이 있다. “남해에 기적을 만들 구상”이라고 말했던 박익주 전 의원의 계획은 “읍 중심부의 남해경찰서를 무림동고개로 옮기고, 거기에 민자를 유치해 10층 규모의 대형복합상가를 세우고 남해읍시장을 현대화한다. 물건항에는 요트기지를 만들고 미조항은 삼천포를 대체하는 어업기지를 조성한다. 설천에는 케이블카를 설치해 위락시설을 만든다”는 것으로 당시로서는 담대한 구상이었다. 

또 박익주 전 의원은 10년 전 인터뷰에서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밀어줬던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박익주는 이제 군민들 기억 속에 이름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박익주 전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호는 동림(東林)이다. 1931년 4월 19일 남해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6.25 전쟁 때는 소대장이었으며, 제9보병사단 참모장, 제1야전군사령부 정보처장, 제5관구 부사령관을 거쳐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또한 박 전 의원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시 남해-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해 무소속 이수종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민주정의당 경남도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한국국민당 최치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또한 1991년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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