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그리고 생명
숲 그리고 생명
  • 남해신문
  • 승인 2020.06.0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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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여전히 우리를 살릴 아름다운 터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게 될 스트레스나 마음의 병을 고칠 방편에서 보면 숲처럼 아름다운 곳도 없을 것입니다. 아름드리 새들의 노랫소리는 뭇 생명의 잠재된 본성을 깨우칠 자극제가 될 것이요, 햇빛 따라 반짝이는 녹색 내음은 만물을 편안하게 할 향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릴 방편에서 숲의 충만한 기운은 내면의 정신을 밝게 할 기폭제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색(色)과 향(香)과 에너지가 공존하며 전하는 메시지는 경이로움을 넘어 가히 신비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큰 잎은 가진 활엽수는 어린나무를 위해 그 넓적한 잎을 열거나 닫으면서 비와 햇볕이 스며들게 정성을 다합니다. 여기에다 물이 부족한 이웃 나무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뿌리의 넉넉함은 모든 이에게 본보기가 될 자애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말없이 궃궃하게 지조를 지키는 생명이 어쩌면 이처럼 절묘하게 상생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생명의 숲, 회생의 숲이라 부를 만큼 철학적 견해로서의 숲은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 줄 보고(寶庫)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상보, 협업, 중용, 창조의 원리로 이어지는 생명 활동입니다. 서로 돕고 나누며 중도의 질서를 품부하는 숲의 원대함,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약동불식(躍動不息)의 의지로 무언가를 창조해내려는 신념, 이것이 숲의 숨은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생명과 수행의 관점에서 숲은 이 시대를 이끌 영성의 패러다임으로 모든 이가 추앙하는 신성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 숲은 생명을 보존할 마지막 보류로서 인간 내면의 자연성을 회복할 본보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욱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즈음 같이 순수와 청명의 이미지가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길이 새겨볼 대목입니다. 이러니 우리가 어찌 숲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산업화 이후 우리에게 다가온 개발 방식은 주로 숲을 무차별 훼손함으로써 대량 생산을 가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질 일변도의 구도로서 보면 훼손이 있어야 생산물의 다량 소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논리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숲을 훼손함으로써 나타나는 재해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면 자연을 파괴의 대상으로 여기는 관념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늘이 있고 땅이 모인 자리에 숲이 생겨나고 그 숲의 산소에 의존하여 생명을 영위해가는 이치에서 보면 숲은 곧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로 연결되는 고리로서 공생의 관계이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숲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곧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요 자연의 실상을 파괴하는 행위는 곧 자신의 본성을 죽이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절단과 파괴의 심각성을 예측하며 이제 숲을 좀 더 솔직히 바라보자, 그들의 진실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자, 그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며 무엇을 들려주려 하는가? 혹시 모를 심리적 아픔이나 고충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고민하는 것은 아니냐는 그들의 맺힌 아픔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일체 생명은 정녕 깊고 심오한 숲, 단지 맑은 공기를 마신다거나 경치가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자아내는 것 이상의 삶의 지혜가 깃든 숲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입자와 파동의 원리가 그렇고 색광과 빛의 향연에서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내밀한 조화가 그립기에 또한 그렇습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니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초자연의 이법도 서려 있고 순환, 생성의 이치를 어김없이 이행하는 초연함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숨어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그 숲에 가면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숲에는 “생명을 용솟음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희망을 섭렵해보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열망에서 우리 고장 남해의 숲을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숲은 과연 건강한가요? 마음으로 교감하면서 대화 나눌 힐링의 숲은 어느 정도인가요? 만약 그러한 공간이 없다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숲을 지정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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