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도 장인 장모가 생존해 계실 때나 김서방, 이서방 해도 두 어르신이 저승 간 후엔 쓸모없이 쳐다만 볼 뿐 오갈 데 없는 발길은 처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림의 떡일 뿐이다. 
비록 그 집안 권리는 처남이 차지해 살아도 장인 장모가 살아계셨다면 대문 안에 발은 디딜 수 있었을텐데  젊은 그 시절엔 돈 한 뭉치 들어 올 꿈을 꾸면서 노년은 생각지도 않고 떠났지만 나이 들어 막상 고향에 와 보니 서운한 마음이 저절로 솟아나고 젊은 시절의 생각이 왜 그렇게도 짧았을까 하는 마음에 후회가 될 것이다. 

젊은이 여러분, 고향에 들어오면 대궐같은 집이 주인 들어오라고 기다리고 있네요 
제가 사는 동네도 빈집이 많아도 집 팔라고 하면 노년에 들어 올거라며 안 팔고 가만히 모셔 두고 있어요. 언젠간 집주인이 들어오면 남해라는 섬이 더 활기를 되찾겠죠.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고 배움의 시간을 가졌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고향을 잊지 마세요. ‘고향’이라는 두 글자는 무엇일까요.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좋겠다는 소리도 종종 들어 봤지요. 고향은 내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고 어릴 적 삶의 추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속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도 고향, 기쁠 때도 고향,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 아닐까요? 

70년대 초부터 새마을운동으로 인해 초가지붕을 스레트(슬레이트)로 바꾼다고 김상진 씨의 노래 ‘새마을 내고향’이라는 노래도 나왔지요. 그 시대 고생하시던 분들 80~90%는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지붕공사를 시작하면서 어른들이 ‘이제부터 나래 엮을 필요가 없어 수월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재미있게 지붕공사를 했을 겁니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엔 자기네 양념 하려고 조금씩 심었던 마늘이 몇 십년 전부터인지 많이 심으면서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죠? 
생활은 조금 여유로워졌지만 마늘이란 존재는 사람의 손을 너무 많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이죠? 농사를 더 많이 짓고 싶지만 젊은이들의 일손이 있어야 농사를 더 지어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야 할텐데 시골엔 노년층이 많다 보니 에너지가 부족해 할 수 없으니 놀고 있는 땅이 많네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따뜻한 남쪽이라 이모작 하기엔 안성맞춤이지만 자기를 어루만져 줄 ‘사람’이 없으니 말 못하는 땅들이 얼마나 서러울까요. 지금은 농사도 기계화가 되어 농사 짓고 사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도 않는 것 같더군요. 고향이 이곳인 젊은이나 여기가 고향이 아니라도 따뜻한 남쪽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분들, 이곳에 와서 이웃과의 대화, 땅과의 대화도 하면서 활기차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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