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습니다. 이 행사는 1969년 미국에서의 해상 원유 유출 사고를 계기로 넬슨에 의해 제정된 후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 취지로 펼쳐지고 있지만, 산업화 이후 전개되는 지구 훼손과 파괴 등의 행위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숲이 점점 없어지고 맑은 공기와 쾌적한 환경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각종 오염원은 더 심각하게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인해 오늘 우리에게 치명적인 코르나 19 바이러스와 같은 괴질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유해한 환경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간이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구에 가득한 것은 수많은 생명이지만 또 한편은 사념(思念-망상, 분노, 욕망, 집착)의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방대한 사념의 에너지가 지구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체 생명은 기운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에서 보면 일종의 동조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마음이 밝으면 밝은 기운이, 마음이 어둡고 괴로우면 어둡고 괴로운 기운들이 여과 없이 나를 비롯한 지구 생명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제임스 록은 가이아 가설을 통하여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공생과 협동에 의한 상호 작용으로 동반 성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참조해보면 지구를 살릴 구체적 방도에서 한시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상이나 기후 변화를 주도할 기술 개발 등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표피적 처방일 뿐입니다. 보다 근원적으로 지구를 살릴 방안을 강구 한다면 그것은 내 안에서 나를 만나는 일입니다. 
내 속에 지구가 있고 지구 속에 내가 있습니다. 내가 건전하면 지구도 건전하고 내가 그르면 지구 또한 그르게 됩니다. 나와 지구는 동일의 기화 작용으로 함께 살아 숨 쉬며 순환, 상생, 조화로 살아가는 영적 공동체이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나의 실체는 빛으로 승화된 본성입니다. 이 경이로운 본성을 발휘할 때 지구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살려내어야 할 지구의 날 행사가 다채로웠습니다. 특히 저녁 8시를 전후한 소등 행사는 가히 백미였습니다. 매일 만나는 밤을 절제의 감각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밤이 갖는 소중한 의미를 잊어버린 체 인체의 생리에 유해한 자극으로 밤을 오히려 소란스럽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밤이 낮처럼 변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차분히 다스릴 밤의 변환이 그리울 따름입니다. 
밤은 쉬어야 하고 수렵의 기운을 도모할 숙면의 시간이자 음의 기운을 신장시킬 명상의 시간입니다. 혼돈을 잠재울 초유의 시간이자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밤으로 드러날 음의 기운은 수승화강으로 생명을 재생할 최적의 시간대에 우리가 진실로 맞이해야 할 밤의 정서를 양생의 심학(心學)으로 유추해보기도 합니다. 마치 사시 절기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어질 신체 리듬을 낮과 밤에 맞춰 몸을 운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밤과 어둠의 노정에 완벽히 몰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밤에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는 것은 본성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정말 소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명의 영향력이 밤에 집중적으로 빛날 공산에서 각종 전기제품의 눈부신 기술력은 오히려 밤을 치명적으로 만들 뿐이라는 것을 감지해보면서 말입니다. 
사람이 밤에 쉬어야 하듯이 그렇다면 지구도 쉬게 해주어야겠습니다. 소등해 보니 시야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밤에 문득 하늘에는 여전히 지구를 비추고 있는 빛나는 별이 반짝거리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척 아름답고 경이로운 밤하늘의 별빛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승화시켜 지구에 안착시켜야 할 우리는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을 또 다른 별인 본성의 빛 역시 반드시 만나보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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