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성 완
남해경찰서 청문감사관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 보건진료소, 칼바위<첨봉 422m>, 응봉산<鷹峰山 472m>, 설흘산<雪屹山 481m>, 망산<望山 406m>, 가천 다랭이마을, 7km)

가정의 달 5월의 징검다리 연휴 기간 중 찾은 산행지는 남해 한려수도의 망망대해를 발아래 두고 바다 건너 전남 여수와 고흥반도를 마주 보며 보물섬 남해의 숨을 비경을 간직한 남해군 남면 응봉산(鷹峰山 472m)과 설흘산(雪屹山 481m) 그리고 미국 CNN에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선정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5호 가천다랭이마을입니다.
응봉산(鷹峰山 472m)과 설흘산(雪屹山 481m)은 남해지맥(南海枝脈) 구간 중 송등산(松登山 617.2m)에서 분기하여 남면 무지개마을인 홍현마을을 거쳐 한려수도의 푸른 바다에 내려앉게 되는데. 남해 보리암, 동해 낙산사 홍련암, 서해 보문사 등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관음기도처 중 한 곳인 전남 여수시 돌산도 금오산(金鰲山 323m) 향일암(向日庵)을 마주 보며 남해안을 동서로 길게 칼날 같은 암봉과 육산이 펼쳐져 비다의 해풍을 막아주는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행 초입 남면 선구(仙區)마을은 본래 우리말로 배가 많이 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백림(栢林), 배구미로 불려오다가 지금은 옛 전설에 신선이 놀던 곳이라 하여 선구(仙區)마을로 불리고 있는데, 경남도 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 되어진 선구 줄긋기가 유명한 마을이지요. 일제가 주민들간 단합을 막기 위한 말살 정책으로 없앤 것을 기능보유자 김찬중 등 주민들이 자존심을 지키며 문화의 맥을 오늘에까지 이어온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입니다.

초입부터 발아래 항촌마을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망망대해의 푸른 바다, 전남 여수 화학단지로 입출항하는 상선과 화물선이 바다의 고속도로로 불리는 특정해역을 따라 쉼 없이 움직이는 해상을 뒤로 한 채 육산을  따라 칼바위 능선길로 진입합니다. 필자가 다녀온 울산 신불산(神佛山 1,159m)과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逍遙山 587m)의 칼바위 능선과 비슷해 보인 이곳은 물고기 등뼈나 공룡의 등 같은 모습 같기도 하고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천길 낭떨어지와 건 너 산 아래 임포마을의 아기자기한 자연의 모습과 야산 능선을 좌우로 조망하며 칼날 등 같은 바위의 아슬아슬한 등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칼날같은 기암괴석의 능선이 서에서 동으로 길게 뻗어 있는 바위산인 응봉산(鷹峰山 472m)의 능선에 다다르니 사방의 조망은 막힘이 없는데, 먼저 진행 방향 동쪽 앵강만 너머 남해 금산과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편의 서쪽에는 여수 돌산도와 금오산, 향일암, 영취산 그리고 고흥반도가 위치하고, 남쪽 발아래 그림같이 펼쳐진 다랭이마을의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모습, 그 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와 고요한 바닷물결 위에 떠 있는 대형 상선과 화물선 그리고 어선들의 바쁜 움직임 등은 보물섬 남해에서만이 유일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응봉산(鷹峰山 472m)은 필자가 다녀온 경북 울진 응봉산(鷹峰山 998.5m)과 똑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곳으로 울진 응봉산은 어느 조씨가 사냥 중 놓인 매를 이곳에서 찾았다 하고, 또 울진에서 보면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부른다고 하는데, 이곳은 정상을 매봉(鷹峰)으로도 부르며, 옛날 매를 받아 꿩사냥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비둘기로 야생 매(鷹)를 유인하여 생포했던 곳으로 붙잡은 매(鷹)는 주인과 동거하면서 길들려 져 꿩사냥을 하게 되는데, 그때 당시 몰이꾼으로 따라다닌 유년기 추억의 단초를 만들어 준 곳이기도 하며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매(鷹)와 관련이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응봉산에서 가천다랭이마을을 우측 아래로 두고 진행 방향 좌측의 용문사와 납산 그 뒤로 펼쳐진 남해의 주봉 망운산,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의 운해를 봐가며, 누군가가 세워둔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임제선사의 글 수처작주(隨處作主)의 팻말을 지나 설흘산(雪屹山 481m)에 안착하니 2003년 6월 7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48호 봉수대가 위치하는데, 남해 금산에서 봉화를 받아 망운산과 여수 돌산도로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곳으로 조선시대 남쪽지역의 해안 방어와 관련된 관방시설도 둘러보면서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이 한양에서 귀향 와서 머물다 생을 마감한 앵강만 주변에 떠 있는 노도와 소치도를 보면서 다랭이마을로 내려섭니다.

설흘산(雪屹山)은 "눈 설(雪), 산 우뚝 솟을 흘(屹)"자인데, 과거에는 소흘산(所屹山)으로 불리다가 설흘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하나, 그 유래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가 없어 아쉬움이 더한 곳이기도 합니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대대로 마을에서 살아온 김해 김(金)씨, 함안 조(趙)씨 가(家)의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신라 신문왕 당시로 추정되어 진다하며,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오다가 조선 중엽에 이르러 마을 양 곁에 내(川)가 2개 흐른다 하여 가천(加川)으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며, 2002년 농촌진흥청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어 진 곳입니다.

산행 마지막 가천다랭이마을 암수바위는 조선조 영조 27년(1751년)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나타난 노인의 말에 따라 땅에 묻힌 암수 바위를 꺼내어 미륵불로 모시고 논 다섯 마지기를 위토로 하여 매년 바위 발견 날인 음력 10월 23일 제사를 지내왔다 하며, 원래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으나 바닷가이다 보니 풍어도 함께 빌고 있다고 합니다. 응봉산과 설흘산, 가천 다랭이마을

그리고 한려수도와 앵강만 주변의 풍경은 보물섬 남해의 숨은 비경으로 글로 어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풍로상설(風露霜雪)과 사시성쇠(四時盛衰)의 기나긴 역사의 흐름속에 숨은 비경으로 자리매김한 응봉산과 설흘산의 기운 그리고 다랭이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생기를 보며 국민마다 제인질병(濟人疾病)으로 코로나 19의 조기 극복을 기원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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