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많이 떨어지고 엉겅퀴 보라꽃이 필 무렵이었다.
하루하루를 사이좋게 지내는 분! 나는 오늘 이분에 대해 말할까 한다. 흔히들 이분을 구 회장이라 부른다. 
공식 명칭은 재경남해군향우회 구덕순 회장이시다. 오랜만에 내 고향 남해에 갈 일이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구 회장댁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구 회장댁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큰 소나무와 편백나무들로 둘러싸인 작은 산이었다. 집이 있는 것 같지 않은 숲속에 나지막한 하얀 작은집이 있었다. 
자연을 보는 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내 눈에는 어느 동화 속 예쁜 집이었다. 산기슭에 철쭉과 동백이 어울려 가지런히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살아보고 싶은 그림 속의 집. 평소에 구 회장에게서 느낀 검소함과 넉넉한 마음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더 소박해 보인다. 누구는 출세하면 성공했다고 하고, 누구는 돈이 많으면 성공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다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이런 것과는 달리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도 성공했다 말하고 싶다. 넉넉함을 안다는 것은 부유함을 아는 게 아닐까 싶다. 구 회장은 우리네가 생각할 수 없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게 더 많은 사람!
수년이란 길수도 짧을 수도 있는 세월을 매년 재경남해군여성협의회에서 동백과 벚꽃을 장소에 따라 50그루에서 100그루를 심어 성목이 된 나무가 되어가는 걸 보면서 동비마을 해변도로에 벚꽃나무 150그루를 기증해 꽃길 가꾸기를 해왔단다. 올해에는 향우들의 협조도 있어 같이 동참했다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일인가? 
재경남해군여성협의회와 이렇게 가로수나 해변의 꽃길을 가꾸면 20년, 30년 후에는 아주 멋진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꺼라 말하며 즐거워한다. 앞으로 사용할 시간들이 많이 남았다면 그동안 더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라고 말한다. 본인 소유도 아닌 국유지 도로변에 벚꽃나무를 심어 가꾼다는 것은 분명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 싶다.
우리도 선인들이 심어서 가꾸어 놓은 나무와 숲의 혜택을 고맙게 누리고 있지 않느냐고, 나무를 심는 그 자체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냐고 그는 소신있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일찍이 선인들의 뜻을 이어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건 당연하다는 말에서 겸손함을 보았다.
먼 훗날 우리는 볼 수 없어도 나무는 자라 큰 나무가 될 때를 생각하니 행복한 미소가 맴돈다. 평소의 소탈한 모습과는 달리 이런 고결하고 훌륭한 일들은 고집스레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었다니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런 많은 생각들의 값어치를 어찌 내가 알겠냐마는 아마도 내 마음에 성공을 이룬 자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씀처럼 실천하고 있는 구덕순 회장님!
이 말은 자기가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명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때마침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비 오는 산책길에 마주친 새 한 마리의 지저귐도, 작고 여린 이파리가 바람에 팔랑거림도, 바닷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아름다운 춤이었고 음악이었다. 나는 내 고향 남해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부끄러워진다.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나는 침묵으로 그 길을 걷기만 했다.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객지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 그리고 엄마가 그리워 가슴이 시리고 아릴 때 이 길을 천천히 걸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이 길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그리고 구 회장은 서울서 남해를 내려올 때도 노량대교를 넘어서야 고픈 배를 채울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그뿐이랴 다시 서울로 올라 갈 때도 내 고향 남해에서 차에 기름을 가뜩 채워 출발을 한단다. 이러한 구 회장의 크고 작은 애향심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올해 심은 작은 벚나무들도 꿈이 있는 젊은이들처럼 튼튼하고 힘차게 자라길 바란다. 잊은 듯 살아온 내 고향 남해에서 다시 살고 싶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