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성 완남해경찰서 청문감사관
정 성 완남해경찰서 청문감사관

(남해군 창선면 지족<只族>마을, 대방산<臺芳山 468m, 산불감시초소>, 국사봉<國祠峰> 사당, 속금산<束錦山, 358m>, 금오산성<金鰲山城 261m>, 연태산<蓮台山, 339m>, 창선·삼천포대교 입구 14.74km)

창선지맥(昌善枝脈)은 남해지맥이 미조면 빗바위로 가면서 금왕사(錦王寺) 뒷 능선 582.1봉에서 분기하여 내려앉자 창선도를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구간을 말합니다. 남해군의 삼동면 지족리(知足里)와 창선면 지족리(只族里) 사이에 있는 지족해협(知足海峽)에는 빠른 물살을 따라 'V자' 모양으로 발을 쳐 놓은 어구가 죽방렴(竹防廉)인데, 들물과 날물의 차가 크고 물살이 세며 수심이 얕은 뻘밭에 참나무 막대기를 박아 대나무와 그물을 진(陣)으로 쳐 물결을 따라 들어온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미로 형태의 틀로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슬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자산인 원시 어업을 보며 지족(只族)마을회관에서 대방산(臺芳山 468m)을 넘어 창선·삼천포대교 입구로 진행합니다.

남해도(南海島)의 본섬이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이라면 창선도(昌善島)는 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형상이라고 정의연 남해역사 연구회장의 표현이 왠지 가깝게 다가와 보이기도 한 그런 모습인데, 창선면(昌善面)은 남해군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면적 54.4㎢, 32개마을 3,048세대 5,614명(2020년 4월 현재)이 어업과 농업을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전국 섬 규모 중 11번째 큰 섬(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 남해도, 안면도, 완도, 울릉도, 돌산도, 영종도)으로 삼한시대 변진고순시국(弁辰古淳是國), 가야시대 사물국, 삼국시대 유질부곡(有疾部曲), 고려시대 창선현(彰善縣), 조선시대 창선도리(昌善島里), 광해군 13년(1621) 진주목 창선리(昌善里)에 소속되어 있다가 순종 즉위년(1906) 남해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동쪽은 한려수도, 서쪽은 남해와 접해 있고 남쪽은 지족해협 사이에 삼동면과 창선교로 연결된 한려해상 국립공원 지역으로 행정은 남해군이지만, 생활권은 사천시와 가까운 곳입니다.

지족(只族)마을은 옛날 삼동면 지족과 창선면 지족을 왕래하는 나루가 있었던 곳으로 새미나루라고 불리었다 하며, 신흥마을과 인접한 곳에 샘이 좋아 세민날이라고 부르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지족(只族)으로 부르게 되었다는데, 이곳 지족(只族)마을에서 대방산 정상과 창선 삼천포대교 입구 능선상의 구간은 바다에 떠 있는 섬중 보기 드문 대표적인 육산으로 깔끔하게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어 오르고 내려서는 구간이 평안히 이동할 수 있어 남해도서 어디에서 볼 수 없는 창선면 지역민들의 단합과 헌신적인 애향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주산인 대방산(臺芳山 468m)은 표고를 보면 500m 이하로 낮아서 얕잡아 보이지만 높은 곳 이상의 체력이 요구되기도 하며 망경암을 품고 있는 곳으로 꽃봉오리처럼 생겼다 하여 부른다고 합니다. 조선지도에 대방산봉(坮芳山烽), 영남지도에는 대방산봉(對芳山烽)으로 나타나 있기도 하며 대방산 기슭에 위치한 운대암(雲坮庵)은 고려때 창건하여 망경암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때 지금의 장소로 내려와 신축한 사찰로 아침에 기도를 드리면 저녁에 영험을 본다는 팔선지(八仙地) 명당에 위치한 기도도량으로 지역민들의 고된 삶의 안식처로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이기도 합니다.

대방산 정상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강진만이 펼쳐지고, 고개를 들면 남해의 진산인 망운산이 북서쪽에서 감싸주고 남쪽으로 금산과 납산, 동쪽으로는 통영 사량도, 북쪽으로는 하동 금오산, 사천 와룡산과 각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산 능선상 크고 작은 산들의 사이에 위치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 봉수대가 있기도 합니다. 밤에는 봉화를 올렸고 낮에는 연기를 피어 올렸다는 대방산 봉수대는 남해안에서 발생한 모든 상황을 육지로 전달하는 중간 봉수로서 최남단의 금산봉수대와 사천 각산에 있는 봉수대와의 교량 역할을 한 중요한 곳으로 육지와 소통하였다고 전해 옵니다.

나라와 마을주민들의 안녕을 지켜달라고 빌었던 사각형의 돌담 형태로 남아 있는 국사봉(國祠峰)사당, 옥녀가 베틀에 앉아 비단을 짜는 형국 같아서 비단을 감아 놓은 모양 몰케를 뜻한다는 뜻의 속금산(束錦山, 358m)을 지나면서 남쪽 바다를 보며 펼쳐지는 동대만과 가인리 해안의 비경이 시야를 채웁니다. 주변에 개화된 소박한 마음의 꽃말을 가진 보춘화가 집단서식하고 있고, 보물주머니·비밀의 꽃말 현호색과 외로운 사람의 꽃말 홀아비 꽃대, 귀여움의 꽃말 개별꽃, 재능의 꽃말을 가진 으름덩굴 꽃 등 야생화와 지천에 늘려진 고사리 등의 환대속에 피곤함도 잊은 채 이동합니다.

금오산성(金鰲山城 261m, 경남도기념물 제249호)은 남해안 자역의 전형적인 석축산성으로 금오산 정상과 골자기를 둘러쌓아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 경사가 매우 급하여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산성인데, 성의 둘레는 665m, 2~3m 높이로 연못 터와 건물터가 남아 있고 고려말 조선초의 남해안 방어시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되며 임진왜란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데, 임진왜란 이후 군마(軍馬)의 방목지로 활용되었다고 전해오며 산성의 일부는 복원되어 있지만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곳곳이 무너지고 수풀에 묻혀 그 형태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어 시급한 복원을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연태산(蓮台山, 339m)을 넘어 마지막 산행 종착지 창선·삼천포대교 입구에 안착합니다. 창선·삼천포대교는 국도 3호선(미조~초산) 구간인 창선면 대벽리와 사천시 대방동을 연결하기 위해 총연장 3.4㎞, 구조와 형식이 각각 다른 7개의 교량을 1995년 2월에 착공하여 2003년 4월 28일 개통하였는데, 상주, 미조와 삼동 등 남해 동부권 지역주민들과 관광지를 연결하는 교통로로 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창선은 고려 때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국마(國馬)를 키우던 말 목장이 있었던 곳이 대방산 자락 지금의 운대암 뒤편 얕은 구릉지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당시 말 목장의 감목관으로 온 사람들의 선정비, 영세불망비 등이 남아 있어 당시엔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것은 창선 고사리입니다. 500ha 면적에 1,400농가가 연간 150톤을 생산하여 60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40%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 대규모로 면(面)단위에서 전국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모습에서 창선면민들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고 있으며 또한, 창선ㆍ삼천포대교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는 등 관광지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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