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성 완
남해경찰서 청문감사관

오늘 산행은 남해지맥(南海枝脈) 4구간으로 앵강고개에서 금산(錦山)앞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미조면 빗바위에서 남해바다로 조용히 내려앉는 마지막 구간입니다. 하천은 짧고 협소한 평지의 남해는 최고봉인 망운산(786m)을 비롯하여 납산(626.7m)과 금산(705m)을 이어가면서 크고 작은 봉우리를 내려놓고 그사이에 삶의 터전인 마을을 만들고 또다시 천혜의 자연경관과 함께 오염되지 않은 풍부한 어족자원을 후손들에게 가져다주는 천하의 길지(吉地)이기도 합니다.

산행 초입 앵강고개에서 공동묘지를 거쳐 이동하는 구간의 지천에 늘려진 갈비(소나무 잎)와 가랑잎을 밟으며 금왕사(錦王寺) 뒷산 바위 능선과 육산의 올내림을 따라 반겨주는 진달래를 쫒아 진행합니다. 능선길 바로 밑에 위치한 금왕사(錦王寺)는 기(氣)가 센 사찰로 보리암과 용문사에 가려져 있는 암자이기도 하죠. 돗대와 코끼리 머리 형상의 바위를 조망하며 381.5봉과 582.1봉을 지나가지만 산 이름이 있을 법도 하지만. 무명봉(無名峰)으로 있어 아쉬움도 가집니다.  

민족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꽃, 진달래가 곳곳에 만개되어 있고, 야산에 개화를 시작하는 질투의 요정 엘레지, 봄 야생화 중에서 백합과 다년초로 가장 화려하고 요염한 꽃으로 단 2장 호피모양 얼룩얼룩한 무늬의 넓은 잎에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데 씨앗이 싹 터서 꽃을 피우기까지 적어도 7년 이상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죠. 
금산방향 복골과 582.1봉 능선상의 편백숲은 일제 강점기 때 껍질이 어선들의 선박 자재로 사용되면서 편백의 껍질을 벗겨 바다 건너 여수로 가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대신 나무는 고사(枯死)되고 산림이 황폐화되어 단속으로 주민과 행정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과 함께 삶의 애환이 서려있던 곳인데, 해상으로 이동하다가 불이의 사고로 가족들과 이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어려웠던 시대 선조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이 오늘의 자랑스런 남해인으로 삶의 지혜와 끈기를 심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능선을 타고 넘어 도착한 곳이 삼동면 내산(內山)마을입니다. 모든 범죄는 언제나 112로 신고하면 처리되는 112의 창시자 남해의 자랑 금암 최치환(錦巖 崔致煥, 1922.10 22~1987.5.27) 선배님께서 탄생하신 곳입니다. 두메산골인 이곳 마을 뒤 순천바위는 가까이서 보면 70m의 높이에 개별바위 하나하나를 쌓아 놓은 모습으로 이곳에서 멀리 순천이 보인다 하여 부르며, 금산의 유명세와 위용에 가려져 있지만, 내산마을 주민들에겐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고 평생을 의지해 왔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육산을 따라 산불감시 초소에 안착하여 바라본 금산(錦山)입니다. 2008년 5월 2일 명승 제39호,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8호로 각각 지정되어 졌고,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 중 한 곳이기도 하며. 신라 때 원효(元曉)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세워 보광산(普光山)이라 부르다가 고려 후기 이성계(李成桂)가 이 산에서 100일 기도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고 하였으나, 엄청난 비단으로 감당키 어려워 산의 명칭을 비단 금(錦)으로 하여 금산(錦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지요.

또, 전국 3대기도 도량 중 한 곳인 보리암(菩提庵)은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로 동해안 낙산사 홍련암, 서해안 석모도 보문사와 함께 한국의 3대 관음도량 기도처로 세 곳의 공통점은 모두 기운이 뭉쳐진 바위산 끝자락에 암자가 자리 잡고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李氏祈壇) 영응기적비(靈應紀蹟碑)는 지역민의 상소에 따라 1903년 5월 고종황제의 어명으로 비문을 짓고 세웠습니다.

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상주에서 쌍홍문을 거치는 등산로와 뒤편에서 차량으로 올라와 20여분간 걸어서 이동하는 길이 주된 통로였으나, 지금은 부소암(扶蘇岩 일명 법왕대) 방향인 양하리 두모마을에서 숲속으로 3.2km 오르는 길을 개방하여 요즘 입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남해 바다와 전남 여수 등 섬들의 비경을 조망하면서 안전하게 오를 수 있게 되어 있기도 한데, 이곳까지도 원효대사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남해지맥 등산로상에 있는 남해장성(南海長城)은 이동면 신전리 복곡에서부터 삼동면 대지포와 수장포까지 20여km 구간에 이르는데,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1996년 3월 11일 경남도 문화재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남녘의 야산에 흐드러지게 개화된 청렴·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가진 연달래, 일명 산철쭉이라고 하죠. 금산을 뒤로 하고 내산(內山)마을을 좌측 발아래 두고 오르는 가마봉(453.5m)은 산의 형태가 가마처럼 생겼다 하여 부른다고 하는데, 가마봉 정상에서 바라본 남해안의 바다와 섬들은 물을 베고 누워 있는 그런 모습으로 시야를 채워줍니다.

가마봉을 거쳐 신작로 입구의 초전(草田)마을, 필자가 초중고교 재학시절 앵강만에서 미조구간은 간첩선이 자주 침투하여 고향민들의 마음을 조리게 했던 이야기를 추억삼아 나누기도 했습니다. 송정해수욕장과 미조연안을 갈라놓고 초전마을부터 빗바위로 뱀처럼 이어진 긴 능선을 따라 망망대해를 쫓아가면서 만나는 곳곳이 개발의 논리에 밀려 신음하는 모습들을 보며 마지막 대륙의 기운을 받아 솟은 망산, 망운산 (287.3m)으로도 부르고 남해의 주산 망운산(望雲山 786m)과 같은 이름이지만 높이와 위치가 다를 뿐 입니다. 

보물섬 남해지맥의 끝자락 미조면(彌助面)은 남해군의 최남단으로 1986년 4월 1일 미조출장소가 미조면으로 승격된 이후 송정솔바람해변과 쪽빛바다 설리해수욕장, 기암괴석이 즐비한 해안선과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로 잘 그려 놓은 한 폭의 수채화가 연상됩니다. 어업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남해군수협이 위치하고 청정해역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들은 계절마다 다른 맛으로 미식가를 붙잡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조면의 끝자락 새가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섬 중의 섬 조도(鳥島)와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호도(虎島) 등 유인도를 바라보며 전망대봉 아래에 있는 수령 700년생(추정)의 소나무인 용나무, 용암이 분출하면서 바닷물에 식은 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해주는 해안의 암반과 오래전 어머니들이 쓰던 얼레빗을 닮았다 하여 부른다는 빗 바위에서 남해지맥 종주(54.71km)를 마감하고 대륙의 기운을 망망대해로 내려놓습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