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우리가 무수히 들어온 조상들의 가르침이다. 삼국유사에 당대 최고의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원효대사가 지방을 순행 중 머슴인 뱀복이(蛇卜)를 만나 설법을 하다가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생로병사다.”라는 그의 말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예불을 시작하기 전에 입부터 씻고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왼다. 잘못된 말을 참회한 후 다른 행동을 행하라는 가르침이고 모두 말의 중요성과 조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 때 우리 지역의 선량이 모당의 대변인으로  있을 때 그 험악한 정치판에서 번뜩이는 위트와 해학으로 웃음을 준 적이 있다. ‘촌철살인의 미학’으로도 불리던 그가 잠시 당의 임시의장을 맡았을 때는 그 역할을 의심하는 듯한 기자들의 질문에 “하루를 피어도 호박꽃도 꽃이다.”고 하여 각박하게 돌아가는 정치판에 신선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 일화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그의 기가 막힌 순발력이 뭇사람들의 머리를 탁 치게 했으니 그럴 만도 하고 지금 생각해도 참 흐뭇하다.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 방송을 탄 정치인들의 짧은 말 때문에 파장이 일고 서로 상대방을 분노케 하는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아무리 바른 말이라 해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상대를 속상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상대의 입장이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마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또 결정적으로 상대에게 결정타를 날려 사회적으로 타격을 주려한다. 그러고도 자신은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대범한 줄 안다. 이런 경향은 자신이 한 말을 쉽게 잊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감정이 오래 가지 않고 좋은 성격이라 한다면 자라면서 대범함과 남자다움을 강조한 가정교육이 이런 경우에는 꼭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상대는 그 상처가 오래가고 여운이 진하게 된다. 가벼운 말 한마디가 일생의 상처로 남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남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도 뒤끝이 없는 사람으로 자처한다고 변명이 될 수 없으며 뒤끝까지 있다면 씻을 수 없는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와 같이 일반인들도 개인적으로는 말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나 지역에서 그 영향력이 대단한 정치인들의 경우 더욱 자제를 해야 한다. 사석도 아닌 그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 있는 중앙 언론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한 각설과 그 후폭풍은 여타 지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당연히 당사자들은 거두절미된 짧은 발언으로 치부하기 십상이겠지만 방송의 속성이나 지역의 현실 등 여러 정황상 거두절미를 상정하여 발언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에는 상대의 결정적인 약점을 여론에 알려 굴복케 하거나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히는 것을 노렸음 직하다. 다시 말해 선정적일 수도 있는 일부 독자들의 경향에 편승하여 지지기반 확대라는 궁극적인 목적 달성을 시도하고 결국은 정치인들끼리의 싸움에 일부 개인들의 이해득실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심각한 지역주민 일부의 분열상을 외부에 알리는 결과도 낳게 하였지만 또 다른 차원의 지역갈등 요인으로 비화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입으로만 지역발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노력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일 것을 주문한다. 모두가 지역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이고 그 방법을 달리 할 뿐이라고 변명하겠지만 상대를 의식한 공허한 말장난으로 종국적으로 상대에게나 지역민에게 상처만 남기는 일은 삼가 하기 바란다. 정파를 달리한다고 해서 적이 아니며 모두가 서로를 보담을 수 있는 지역의 훌륭한 일꾼이기 때문이다.   

이차돈 선사의 목이 떨어진 곳으로 전해오는 경주의 백률사 경내에는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도솔천에서 처음 내려와 밟았다는 작은 바위의 희미한 발자국 모양은 항상 내방객들의 경배 대상이다. 그것을 누가 언제 인공적으로 만들었거나 우연히 자연적인 모습이었거나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
지역 발전이라는 지상 과제를 우선시하면 애향심이 저민 경우 정파는 수단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사로운 말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해서 뜨거운 가슴을 열고 상생을 위해 손을 마주 잡아야 한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요, 깨끗하고 티 없는 마음 부처의 마음일세”라는 경구를 꼭 들려주고 싶은 것은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