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지도에서 본 남해사직단(추정) 위치
다음 지도에서 본 남해사직단(추정) 위치
지난 1일 찾은 실제 현장의 모습
지난 1일 찾은 실제 현장의 모습

사직단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유교가 나라의 근본이었던 조선시대에 사직은 종묘(宗廟)와 함께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시설이었고 사직(社稷)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국가의 여러 제례 중에서 가장 격식이 높은 대사(大使)중 하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와 6ㆍ25전쟁을 치르면서 전국 각지 대부분의 사직단을 보기 힘들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남해읍 서변리 254번지 남산공원 농구장 맞은편, 남해사직단 터로 추정되는 유력한 위치다. 이 내용은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의 제보로 이뤄진 것으로 조현근 국장은 “논문과 고지도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영·호남 지역에서 30개가 넘는 사직단을 찾아 각 지자체와 언론사에 공유해오고 있다”며 “남해사직단은 해동지도나 지승, 여지도 등에 나오지 않는다. 또 남해읍지에도 사직단이나 여제단, 성황단에 대한 걸 찾기 어려웠다. 남해사직단은 최원석 경상대학교 교수가 집필한 <경상도 邑治 경관의 역사지리학적 복원에 관한 연구: 南海邑을 사례로>라는 논문 중 아천문화관 소장본 <남해고지도>에서 볼 수 있었다”며 설명했다. 
이러한 제보로 군청 문화재팀 여창현 학예사는 (재)두류문화재 최헌섭 연구원장과 조현근 사무국장을 초청해 지난 1일 남해사직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그 결과 두류문화재 최헌섭 연구원장은 “사직단이 들어서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인 것 같다. 너무 좁은데다 지대 자체도 푹 꺼져 있는 현상이다. 불과 2~30평 남짓인 공간으로 대지 자체가 너무 좁아 과연 사직단이 있던 곳일까 의문스러워 여기가 사직단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여창현 학예사 또한 “형상 변경이 많이 되어 조사를 해도 잘 나오기 어렵겠다. 사직단 추정지 주변 환경 또한 이미 다 형성이 되어버린 곳과 묘지가 대부분이라 조사 자체의 실효성이 적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현장을 둘러본 이들은 “우선 육안으로, 지표조사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때라야 시굴조사의 의미가 있다. 유물이라도 지표에서 채집이 되어야 하는데 그도 아니고 위치 또한 사직단이 있었다고 하기엔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여러 정황 근거 상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일단락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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