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성 완
남해경찰서 청문감사관

남해지맥(南海枝脈)은 지리산을 거쳐 내려온 백두대간이 최후에 낙남정맥을 내려보내어 하동 옥종 옥산에서 소백산줄기와 함께 하동 금오산을 지나 남해안의 중앙인 하동의 노량 앞바다로 내려서고, 남해대교 건너편 남해노량에서 솟구쳐 올라 산성산(158.3m), 구두산(370.7m), 금음산(480.9m), 대국산(371.3m), 삼봉산(422.5m), 망운산(786m), 관대봉(595m), 괴음산(605m), 송등산(617m), 납산(626.7m), 금산(705m)을 휘감고 돌아 산불감시초소, 미조 망산(망운산 287.3m)으로 내려서서 남해도의 최남단인 미조 밧바위에서 그 맥을 마감하는 도상거리 48.7 km 산줄기를 말한다. 
하천은 짧고 협소한 평야지대의 남해는 최고봉인 망운산(786m)을 비롯하여 납산(626.7m)과 금산(705m)을 거쳐가는 남해지맥으로 북쪽 광양 백운산, 지리산, 금오산과 섬진강 하구 그리고 하동이 방풍 역할을 하고, 서쪽 전남 여수와 고흥, 동쪽으로 사천·고성의 산들과 함께 통영의 사량도와 욕지도, 남쪽으로 매물도 등이 새끼쳐서 뿌려놓은 듯, 남해 바다를 발아래로 굽어보면서 가슴이 확 트이는 신비스런 비경을 즐길 수 있는 천상천하 최고의 산줄기로 보여진다.
매주 구간별 산행을 통해 천하의 길지 남해의 새로운 모습을 내외 군민들께 전하면서 코로나 19를 조기에 극복하고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길 소원하면서 남해지맥의 기운찬 모습을 매주 고향의 언론 남해신문을 통해 연재하여 희망을 안겨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남해지맥 1 구간 : 남해군 설천면 남해대교 입구, 산성산<159.1m>, 노량공원, 구들뫼<377.9m>, 귀두산<龜頭山 구두산 377.9m>, 금음산<金音山 480.9m>, 약치곡산<455.3m>, 대국산<371.3m>, 도산마을 뒷능선(와야등), 삼봉산<422.4m>, 남해군 서면 현촌마을 16.3km). 

이번 주 첫 산행지는 남해지맥 48.7 km구간중 1구간 남해대교 입구에서부터 지맥 산행을 시작하면서 입산을 고합니다. 노량 충열사는 불멸의 영웅 이순신장군께서 나라를 구하고 장렬히 순국하신 그 현장입니다. 아마도 장군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장군의 고귀한 희생을 이곳 고향 남해지맥에서 가슴 깊이 새기고 또 다져봅니다.
1598년 11월 19일 전쟁에 패하고 철수하기 위해 노량에 집결한 일본군을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혼전 중 유탄에 맞아 순국하신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간의 임진왜란을 끝냈건만 장군께서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뜨신 이곳 노량에서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몹시 급박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남해대교(南海大橋)는 총연장 660m로 현대건설에서 1968년 5월 착공하여 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인 1973년 6월 22일 준공하였는데, 고향 도산마을에서 나홀로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준공행사를 보고 또다시 걸어서 돌아간 기억밖에 나지 않지만, 당시엔 산성산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던 곳을 대통령이 오신다고 식목 행사를 통해 조성한 나무가 지금은 훌쩍 커서 이곳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여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남해대교의 남쪽 산, 구들뫼(377.9m)는 온돌에 사용되는 구들장이 많은 산이라 하여 부른다는데, 옛날 이 산 주변에서 구들용 돌을 많이 채취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산은 낮지만 바다에서 치고 오르는 구간이라 높은 곳 이상으로 힘들게 진행합니다. 남해섬을 거북이 형상으로 보고 구두산(龜頭山)은 거북이 머리로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그런 기상도 느껴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옛날 어느 도사가 이 산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산 어느 곳에서인지 쇳소리가 났다 하여 부른다는 금음산(金音山)을 지나 등산로 상에 쌓여 있는 갈비와 가상잎(낙엽)을 밟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지게지고 나무하러 다니던 옛 추억속에 잠기면서 보물 주머니 또는 비밀이라는 꽃말을 가진 현호색이 미세 먼지속에 더 예쁜 모습으로 산행길을 가볍게 맞이해 줍니다. 남쪽의 발아래 강진만과 창선도, 멀리 사천 삼천포와 고성, 뒤로 하동 금오산, 서쪽으로 하동 화력발전소와 광양만, 앞으로 남해의 주산 망운산, 이동면 납산의 풍광이 펼쳐지고 9부능선에는 양떼목장이 위치하여 천혜의 비경을 가져다 줍니다.
이 산행길이 남해의 오지 남치마을 뒷산인데, 남해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안보이는 마을이기도 하지요. 어릴적 일명 소쿠리 동네라고도 불렀던 마을입니다. 이어서 옛날 어느 현인이 이 산에서 샘을 파서 그 물을 마시고 장수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약치곡산을 거쳐 대국산성 (大局山城)으로 오릅니다. 이 산성은 해발 375m 높이에 위치하고 설천면 진목리와 비란리, 고현면 남치리에 걸쳐 있으며, 둘레는 1.5km, 높이는 5~6m, 폭은 2.4m 규모로 성안에 연못과 건물을 세웠던 주춧돌이 있고 돌로 쌓은 네모진 경계 초소가 있어 남해 강진만 바다를 감시하였던 것으로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한 모습입니다.

대국산성 (大局山城)은 축조와 관련 전설 두가지가 전해옵니다, 하나는 청이 형제로 500여년전 성아래 비란마을에 의좋은 두 형제가 살았는데, 같은 마을의 한 미모가 출중한 처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내기를 하여 처녀가 하루 저녁 두루마기를 만들 동안 형은 100kg이 넘는 쇠고랑을 찬채 16km 떨어진 읍내까지 갔다 오고, 동생은 대국산 돌로 성을 쌓는 일이었는데, 처녀가 두루마기를 다 만들었을 때, 동생은 이미 성을 완성한 데 반해 형은 제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하자 약속대로 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후 동생은 형의 죽음을 원통 해 하면서 이 산성을 이용해 밀려오는 왜구를 막아내었다는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오는데, 여자 앞에는 예나 지금이나 형 동생이 필요없는 씁쓸한 현실을 보는 듯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천장군과 일곱시녀로 조선 경종때 천씨 성을 가진 장수가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서 일곱시녀와 성 쌓기 내기를 하여 시녀 일곱이 저녁밥을 짓는 일과 장군이 성을 쌓는데 누가 빨리 끝내는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여 일곱시녀가 팔을 걷고 밥을 짓는 동안 천장군은 부채 하나를 들고 산허리에 올라서서 바다쪽을 향하여 천천히 부채질을 하기 시작하더니 일곱시녀가 짓는 밥이 아직 채 김이 오르기전에 바다속에 있던 커다란 바위들이 소낙비처럼 날아와 산꼭대기에 떨어져 저절로 성이 쌓였다는 이야기인데, 설은 설로 봐야 할 듯합니다.

산성에서 바라보는 강진만, 필자의 고향 도산마을, 인근 녹두산등 주변은 미세 먼지로 조망이 되지않아 아쉬움이 많지만, 산행하여 오는동안 즐거운 생각이라는 꽃말을 가진 고깔 제비꽃과 산성에서 자생하는 산자고가 시기에 맞게 봄처녀와 가녀린 미소라는 꽃말과 같이 반겨주어 평안한 산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산성을 돌아 도착한 곳이 정태마을, 남해의 첫 성읍지가 있던 마을로 옛날 지체 높은 분들이 살던 화전고을이 있던 곳으로 함부로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없어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해서 부른다 하는데. 대단한 마을입니다. 성산마을 뒤 능선을 따라 필자의 고향 도산마을 초입 가청고개(42m)입니다. 어릴적엔 가칭고개로 불렀는데, 도산마을 동네에서 고현중학교를 3년간 걸어 다니게하여 오늘의 체력을 간직하게 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 가청고개는 노량해전과 관련된 얘기가 전해옵니다. 어느 날 류성룡의 형 류운룡이 점을 쳐보니 3일 후에 일본 밀정이 중으로 가장하여 자기 집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 후 3일만에 예측대로 중으로 가장한 밀정 두 사람이 자기 집으로 찾아오자, 류운룡은 모르는 척하고 두 명의 중을 극진히 대접하고 술을 많이 먹여 취하게 하였는데, 중들이 잠든 사이 류운룡이 중들의 행랑을 뒤져보니 자세하게 그려진 조선지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몰래 꺼내어 관음포에서 강진만을 사이의 좁은 육지 즉 가청고개를 푸른 물감으로 칠하여 바다와 같이 그려 넣고 다시 행랑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 후 노량해전에서 일본 수군은 조명연합군에 대패하고 패전한 잔병들이 관음포구로 들어와서 지도를 펴보니 강진만으로 해로가 있는 것을 보고 도망하였으나, 가청고개로 가로막혀 있어 지도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쳤다고 하며. 이곳에서 갇혔다고 하여 갇힌고개 라고도 하고 지도에 푸르게 칠을 하였다고 하여 가청(加靑)고개라 전해오는 곳입니다. 고성의 당항포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는데, ‘월이’라는 기생이 일본 밀정에게 술을 먹이고 밀정이 지니고 있던 지도에 당항포에서 서쪽으로 물길을 표시해놓아 후에 일본 해군이 이 지도대로 서쪽으로 나가다가 꼼짝없이 갇혀서 우리 수군에 전멸당했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가청고개에서 도산마을 뒷산인 와야등과 굉미마을은 유년기때 밭으로 거름 바지게와 고구마를 바지게에짊어지고 다녔고,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과 삼봉산까지 나무하고 소풀 베러 지게지고 올내렸던 추억이 서려있는 한만은 곳이기도 합니다. 어릴적 다녔던 산길은 야산으로 막혀 있고 이젠 임도를 따라 평안하게 도착한 곳이 삼봉산(三峰山 422.4m)입니다. 봉우리가 셋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하여 부른다는데, 청렴과 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가진 진달래꽃이 지천에 늘려있고 고현면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야가 트여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보면 남해지맥이 관당마을로 와서 오곡마을 뒷산으로 올라 이곳 삼봉산을 거쳐 현촌마을로 넘어가는 것이 맞을듯한데 구체적 고증없이 남해지맥을 만든 부분은 재검토 되어져야 할것으로 보여지고, 지맥구간 이어지면서 정상의 표지석 하나없고 등산로 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보물섬 행정당국의 개선을 촉구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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