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ENG 대표 박윤덕(58) 향우를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자택에서 만났다. 새벽부터 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집에 들어서니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많이 눈에 들어왔다. 

박 대표는 15년 전 안산시 대부도에 들어와 집과 500여 평의 텃밭을 장만했다.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었고, 닭 25마리, 염소 6마리, 칠면조 한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현재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이지만 박 대표가 살고 있는 대부도는 청정지역으로 유지되고 있어 마스크를 쓴 주민들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박 대표가 하는 일은 각종 기계 설치 기초공사, 코아(지하 지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회전식 시추기로 채취한 암석 시료로서 ‘암심(岩芯)’이라고도 함), 공장 이전, 레이아웃(기계 설계) 작성, 새로운 기계 납품 등 다양하다. 기술자이기에 일거리가 많아 전국에 있는 공장들을 누비고 다닌다. 일이 많아 365일 하루도 쉴 날이 없을 정도다.

박 대표는 “큰 기계를 이동해 알맞은 장소에 정확하게 설치하는 일은 힘은 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다. 기술자로서 양심적으로 일하기에 신뢰를 받고 있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설천면 비란리 정태마을에서 고인이 되신 박성복 아버지와 현재 남해 화방동산에 계신 김효순(93) 어머니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너무 가난하여 외갓집인 고현면 동도마에서 자랐다. 도마초(31회), 남해중(28회)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왔지만 가난 때문에 입학을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광고회사 등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다 1979년에 형이 있는 서울로 상경하여 열심히 건설업종에서 일했다. 박 대표는 12년 전 동서ENG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지금 기술자가 된 것은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 덕이다. 새벽 5시면 일어나 하루에 두세 건 일을 할 때가 많다. 한 달이 30일이지만 50일 일을 거뜬히 해낸다고 자부한다. 그는 고객들이 믿고 많이 찾아 혼자 연 매출액 6억원 이상을 달성한다.

박 대표의 초등학교 친구들은 “박윤덕 친구는 한마디로 의리 있고, 근면성실하며 긍정적인 성격이라 모든 친구들이 좋아한다. 정말 대단하고 믿음직스런 친구”라고 이구동성 입을 모은다. 어릴 때 너무도 가난하여 먹지도 입지도 못한 탓에 요즘은 음식도 제일 맛있는 것을 먹고, 옷도 제일 좋은 것으로 입고 다닌다. 항상  밝고 성실한 박 대표는 스스로 일군 행복을 누리며 대부도에서 꿈을 펼치고 있다.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면 돈 버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 

박 대표는 재안산시남해향우회 회장을 3년째 맡고 있고, 도마초 31회 회장도 역임했다. 바쁜 와중에도 향우회 행사는 빠지지 않는다. 그는 향우들과 동문들에게 “남을 비방하지 말고 서로 배려하면서 남해인의 긍지를 가지고 형제자매처럼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타향에서 열심히 생활하여 모두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고향에 대한 그의 바람은 일거리가 많아져 젊은이들이 남해에서 일하며 자식을 키우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딸 소은씨를 남해로 시집보냈다. 소은씨는 현재 남해에서 남편과 아들딸 낳고 살고 있다. 자신도 화방동산에 계신 어머니를 뵙기 위해 남해를 자주 방문한다. 

박 대표는 “남해는 마늘과 시금치가 자랑할 만한 농산물이지만 언제까지 이것에만 의지할 수 없으므로 대체작물을 연구해서 농산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를 바란다. 또한 남해는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므로 문화유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데 묶어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노인휴양지나 의료기관이 들어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남해를 인식되게 하면 인구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노력해서 기술을 습득하고 사업을 성공시켰고, 지금도 쉼 없이 노력하고 있는 박 대표는 분명 자수성가의 표상이다. 먼 곳까지 찾아온 기자가 고맙다는 박 대표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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