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원에서는 올 가을에 열릴 예정인 학술발표 주제를 “임란과 남해”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의 학술발표에서 지적받은 주제가 통일되지 못한 점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이에 따라 향토사연구 위원인 필자는 개인적으로 “남해선소왜성고(南海船所倭城考)”란 주제를 설정하고 관련 논문이나 서적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인근의 순천왜성이나 사천왜성, 울산왜성의 경우처럼 왜군과의 대규모 전투도 없었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탓인지 국내의 선소 왜성에 대한 연구 서적 등은 부족하거나 내용이 너무 가벼웠다. 부득이 필자는 일본에서 나온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하고 현지를 올라, 유구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미 일본인들이 쓴 연구 논문에 실린, 선소왜성에 대한 상세한 실측 지도와 연구내용의 깊이에 탄복을 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일본 내의 성곽 역사 연구의 일정한 고리로써 또는 강점과 임나일본부설 합리화에 부합하는 역사적인 증거일 수도 있는 왜성 연구가 활발하다. 
그 중 한 분인 H모씨는 열 한번이나 선소 왜성을 방문하고 적은 글에는 “최근 올랐던 곳에 일본인 연구자가 만든 (남해왜성의)세력권 지도가 설명판에 있고, 지금까지 존재를 몰랐던 지역 주민도 인지하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기를 간곡히 바란다”라는 내용이 있어 필자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즉, 일본 침탈의 블랙박스인 선소 왜성 입구의 안내판 설명문의 작은 지도가 하필이면 일본인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에서 그린 지도라는 내용을 명확히 지적하였다. 작은 간판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으나 이런 내용을 아는 한국인은 자존심이 많이 상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 참고 있다가 바로 3월 13일 오후에 군청에 가능하다면 “지도를 바꿔 줄 것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다. 지인인 담당 고위직 공무원에게 연락을 하려다 사소한 것이라 실무자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듯해서 실무자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니 대뜸 “그럼, 선소왜성을 옮기란 말입니까”라고 다소 뚱딴지같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필자의 오류 내용 지적과 한참 동떨어진 내용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옆 사람이 들으라는 듯 개인의 어설픈 공명심은 아무데도 필요 없다. 필자는 분명 “안내판의 지도가 일본인이 그린 것이고, (일본과 관련이 있는)왜성에 그런 것을 그대로 안내판에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취지로 설명을 했다. 그러니 “부산의 유명 왜성 연구가인 A모씨가 준 그림”이라며 필자의 지적 의도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필자도 아는)A모씨의 유명세를 말하며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다. 담당 공무원은 역사에 대해서 해박한지는 알 수 없다. 결코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유명인이 준 그림이라 그 유명세로 다 옳다고 믿었다는 의미로 무슨 문제냐는 투다. 아니면 “자기도 많이 아는데 민간인이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보여 심히 기분이 상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면식이 있는 공무원이 이 모양이다. 인생 경험도 짧아 보이는 일부 공무원이 인생을 다 아는 듯, 대단히 전문적인 척하는 자세가 흔히 “갑질”로 비춰진다. 공무원이 용을 쓰고 한 일이 겨우 남의 논문 베끼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선소 마을 입구의 길에서 왜성으로 올라가는 왼쪽 시멘트 포장 도로 옆에 서있는 자그마한 안내판의 설명문도 일본인들이 쓴 임란과 재란 관련 고서 내용 그대로 이다. 실측 지도의 경우 자세히 보면 일본인 연구자 D모씨의 이름과 작성일자인 헤이세이(平成) 11년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앞으로 일본인 H모씨가 선소 왜성을 다시 답사하기 전에 수정하여 일본인들로부터 놀림감이나 되거나 최소한 오해의 소지는 없애야 한다.
저작권 문제나 내용에 대해서 말하기 이전에 자존심 문제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일본인이라지만 남의 연구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관공서에서 그냥 간단하고 편하게 일하고자 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자그마한 문제지만 분명 양심 문제다. 필자의 지적에도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는 듯 공무원의 자세가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이 간다. 양심도 없이 남의 연구 결과물을 공짜로 쓰고 당연시 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문제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오해의 소지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자그마한 안내판 하나에도 세심한 배려를 하는 자세가 아쉽다. 필자의 지적이 중요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제대로 인식도 못하는 사이 그것이 불러올 문제점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일처리를 하는 여유가 있길 바란다. 자신의 영역에 감히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이 도리어 무슨 큰 문제라도 있는 듯해서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