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함을 얻는다는 의미이며, 도덕적 윤리적으로 인격이 높은 덕망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잣대로 오만(傲慢)에 빠지거나 자만(自慢)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
이렇듯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아는 삶이야말로 품위 있고 덕망 있는 삶일 것이다.
‘안분지족’은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와 상통하는 뜻으로, ‘말로 만족할 줄 알면 욕심이 없고, 머무를 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옛날 중국 요(遼)나라에 허유(許由)라는 현명한 성인(聖人)이 있었는데, 요임금(遼王)은 자신보다 훌륭한 허유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하려고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해와 달이 떠 있는데 횃불을 든다는 것은 웃음거리고, 비가 오는데 밭에 물을 주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이 나라에는 허유라는 성인이 있는데 내가 임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허유에게 임금 자리를 넘겨 주겠노라.”
허유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고, 도리어 그 말을 들은 귀가 더렵혀 졌다며 흐르는 계곡물에 귀를 씻었다. 마침 허유를 찾아왔던 친구 소보(巢父)는 허유의 말을 듣고 귀를 씻은 물에 자신이 몰고 온 소의 입이 더렵혀 질까 봐 두려워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는 이야기의 그림 「허유세이도(許由洗耳圖)」. 
허유는 평소 새들은 숲속에 둥지를 지어도 나뭇가지 하나만 족하고, 큰 짐승이 강물을 마신다해도 배가 차면 그만이라는 지족(知足)의 도리를 가르쳤고,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보고 머무를 줄 아는 ‘지지불태(知止不殆)’와 자신의 분수를 알고 만족하면 평안하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갖추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존경받는 형명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생활 수준이 있다. 자신의 신분과 정도에 맞게 살고 행동하는 것이며, 분수의 분은 몫이란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몫이 있고 자기 형편과 처지가 다르다. 형편과 처지에 맞게 사는 것은 제 분수를 아는 것이다.
균형감을 상실하게 되는 이유는 자신감이 지나치거나 욕심이 많아서다. 자신감이 지나침은 오만이 되고, 욕심이 많으면 과욕이 되어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 않는 ‘중용(中庸)’을 제일의 덕으로 강조했다.
옛날 한 나그네가 날이 저물어 여인숙에 머물게 되었는데, 여인숙 주인이 부인을 둘이나 데리고 살고 있었다. 한 여자는 매우 미인이고, 다른 여인은 못생긴 여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못생긴 여자가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었고, 잘생긴 여인은 오히려 박대(薄待)를 받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나그네는 주인에게 물었다. 
“여보! 주인 양반, 내가 볼 때 그 여자는 못생겼는데, 어찌 잘 생긴 저 여자보다 당신의 사랑을 더 받고 있으니 궁금하오.”
그러자 여인숙주인은 “저 여자는 미인은 틀림없는데, 스스로 미인 인체 하기 때문에 나는 저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모르겠고, 그 여자는 얼굴은 못생겼지만 제스스로 못난 구석을 알고 처신하기 때문에 못생긴 것이 오히려 예쁘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가끔 얼굴값 한다고 시건방을 떠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지위가 좀 높다고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하며, 교만한 눈빛으로 남을 무시하는 사람, 별로 떳떳하지 못한 돈푼이나 있다고 우쭐대는 사람도 있다.
오만과 겸허(謙虛), 겸손(謙遜)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려는 태도를 말한다. 
‘안분지족’과 비슷한 성어로, 가난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본보`18.5.4보도)’가 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