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하나씩은 나름의 금언을 마음에 두고 살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자신이 처한 세상살이가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그러 할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개똥철학 소릴 듣더라도 자신이 지켜야할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마련된 이는 그렇지 않은 이보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의연하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누가 게워놓았는지 모르는 세상의 흔한 금언 이것저것을 삼키며 살아가곤 합니다.
특히나 성인이 되고 인간관계가 넓어질수록 사람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호인인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아 뒤늦게 낭패감을 느끼기도 하고, 무슨 이런 사람이 있나 싶다가도 때로는 그것과는 퍽 다른 인간의 따뜻한 결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잦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의 말이었는지는 몰라도 ‘사람이 어떠하다 말하지 않고, 행동이 어떠하다 말해야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잘 실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어쨌든 이 말은 상대를 인식하는데 있어 선입견을 줄여주는데 무척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줄어든 선입견은 언제나 상대에 대한 보다 너른 이해의 공간을 열어주며, 평소 같으면 상대를 탓할만한 일에 대해서도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비로소 가능케 합니다. 그 사람의 처지, 말과 행동의 맥락을 넓게 잡고 생각하기가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유효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살아온 경험과 현재의 처지에 따라 특정한 생각에 쉽게 기웁니다. 그리하여 ‘그 정책이 어떠하다 말하기 보다는 ‘그는’, ‘그들은’, ‘그 세력’은 어떠하다’는 식의 말하기에 익숙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적 습관은 ‘이해’에 앞서 ‘인식’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게 되고, ‘이해’와 ‘인식’의 도치된 구조는 결국 편견으로 나아가며 끝내는 스스로를 좁은 사고의 틀로 가두는 지름길이 되고 맙니다.
유감스럽지만 최근 TV나 신문 매체 속의 정치 코너를 보다보면 이와 같은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사안에 대한 느긋하고 진중한 이해보다는 급하고 경박한 저마다의 입장 세우기가 우세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는 뒷전이 되며 정치의 언어는 매양 상대방에 대한 비하와 조롱, 폭언과 망언 사이를 바쁘게 오갈 뿐입니다. 그런 연유로 정치는 관심의 대상이었다가도 곧잘 혐오의 대상이 되며 종국에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최고의 처신이 되는 사회적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 혐오에 빠져 혼란스러울 이들을 위하여 선거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개똥철학을 이 지면을 빌어 게워 놓고자 합니다.
‘정당이 어떠하다 말하지 않고, 정책이 어떠하다 말해야 한다’
‘인물이 어떠하다 말하지 않고, 정책이 어떠하다 말해야 한다’
‘이념이 어떠하다 말하지 않고, 정책이 어떠하다 말해야 한다’
물론 ‘정당’, ‘인물’, ‘이념’ 어느 것 하나 정책과 무관하지 않지만 무엇을 우선 생각하고 무엇을 다음에 생각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만큼이라도 입장이 바로 선다면 좀더 의연히 선거를 맞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은 정치란 항상 좋은 정책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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