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의 일본어2
우리말 속의 일본어2
  • 김순영 기자
  • 승인 2020.03.06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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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 관용어 
   일본어의 관용적 표현은 일본어 번역 과정에서 생긴 현상이라 하겠다. 이러한 관용구들은 국어에 표현성을 더 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몇 개를 옮긴다.

·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다. 
  → 네코노 구비니 스즈오 쓰케루(猫の首に鈴を付ける)
· 귀가 멀다. → 미미가 도오이(耳が遠い)
· 귀를 의심하다.  → 미미오 우타가우(耳を疑う)
· 꿈처럼 지나가다.  → 유메노 요오니 스기루(夢の樣に過ぎる)
· 낯가죽이 두껍다.   → 쓰라노 가와가 아쓰이(面の皮が厚い)
·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 메가시라가 아쓰쿠 나루(目頭が熱くなる)
· 닻을 내리다. → 이카리오 오로스(碇を降ろす)
· 도토리 키 재기.  → 동구리노 세쿠라베(どんぐりの背くらべ)
· 마각을 드러내다.   → 바갸쿠오 아라와스(馬脚を現わす)
· 마음을 주다. → 고코로오 야루(心をやる)
· 말 뼈다귀. → 우마노 호네(馬の骨)
· 머리를 짜다. → 아타마오 시보루(頭を絞る)
· 벼락이 떨어지다. → 가미나리가 오치루(雷が落ちる)
· 벽에 부딪히다.  → 가베니 쓰키아타루(壁に突き當る)
· 뿌리를 내리다. → 네오 오로스(根を下ろす)
·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 소오조오니 가타쿠 나이(想像に難くない)
· 새빨간 거짓말. →  맛카나 우소(眞っ赤な噓)
· 손에 땀을 쥐다. → 데니 아세오 니기루(手に汗を握る)
· 손을 대다. → 데오 쓰케루(手を付ける)
· 순풍에 돛을 달다.  → 준푸니 호오 아게루(順風に帆を揚げる)           
· 숨을 죽이다. → 이키오 고로스(息を殺す)
· 시험에 미끄러지다. → 시켄니 스베루(試驗にすべる)
· 애교가 넘치다.  → 아이쿄가 고보레루(愛嬌が溢れる)
· 어깨가 무겁다. → 가타가 오모이(肩が重い)
· 얼굴을 내밀다.  → 가오오 다스(顔を出す)
· 얼굴이 넓다. → 가오가 히로이(顔が廣い)
·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 요쿠니 메가 구레루(欲に目が暮れる)
· 이야기에 꽃이 피다. → 하나시니 하나가 사쿠(話に花が咲く)
· 입을 모으다. → 구치오 소로에루(口をそろえる)
· 입이 무겁다. → 구치가 오모이(口が重い)
· 흥분의 도가니. → 고훈노 루쓰보(興奮の坩堝)
· 희망에 불타다.  → 기보오니 모에루(希望に燃える)
- 박갑수, 국어의 표현과 순화론(1984), ‘출판 문화 속의 일본어 문제’ 참고

4) 일본어 직역투 표현

① 나의 친구의 집→ 내 친구의 집.
  〈참고〉 본디 우리말에서는 조사 ‘~의’를 잘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가 개화기 때의 지식인들이 일본의 ‘노(の)’를 ‘~의’로 번역해 씀으로써 널리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원수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란 노랫말 속의 ‘나의 살던’은 ‘내가 살던’으로 썼으면 하는 생각도, 조사 ‘~의’를 남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② 높이 사다→ 높이 평가하다.
  〈참고〉 ‘높이 사다’는 일본어 ‘다카쿠카우(高く買ぅ)’의 직역이다.
③ 보다 나은 내일→ 더 나은 내일.〈참고〉 조사를 부사로 쓰는 일은 우리에겐 없던 일이다. ‘보다’는 일본어인 ‘요리(より)’에서 온 말로, 이는 영어 good의 비교급  
 better나, many, much의 비교급 more를 ‘요리’로 번역하여 ‘보다 좋게’, ‘보다 많은’으로 쓴 데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는 일본 사람들이 영어를 번역할 때 쓴 표현을 우리가 흉내 내고 있는 말이다.

④ ~에 다름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름없다.
  〈참고〉 ‘~에 다름 아니다’는 ‘~니 호가나라나이(~にほかならない)’를 직역한 일본 말투로, 어색할 뿐 아니라 문법에도 맞지 않는다.
우리는 서술어로 ‘다름이다’와 ‘같음이다’라 하지 않고 ‘다르다’, ‘같다’로 쓰고, 부정하는 말도 ‘다르지 않다’, ‘같지 않다’라 한다. 따라서 
‘~에 다름 아니다’는 ‘~과 같다’나 ‘~과 다름없다’로 고쳐야 한다.

⑤ 축사에 갈음함→ 축사를 갈음함.
  〈참고〉 ‘축사에’의 ‘~에’는 일본어 ‘祝辭に’, 곧 ‘슈쿠지니(しゆくじに)’의 ‘니(に)’를 ‘에’로 번역한 데서 온 기형적인 말투다. ‘규정을 위반한’을 ‘규정에 위반한’으로 한 법률 조항도 이에서 온 잘못이다. ‘(변변찮은 글인) 이로써 축사를 갈음하다.’란 표현에는 겸손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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