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은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드높인 운동이었다. 
그러한 민족정신은 말과 글을 바탕으로 한다. 
새로운 100년의 첫 해를 맞는 101주년 3.1절을 맞아, 우리말 우리글의 현주소를 돌아보고자 특집기고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일본의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는 “서늘한 가을의 ‘언어축제’라니 얼마나 멋진가. 이 지구 어딘가에 ‘모국어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는 나라 가 또 어디 있을까.”라며 우리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돌아보는 국어의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신음하는 우리말
일본교토시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베어 간 조선인 12만 6,000여 명의 귀와 코를 묻어 놓은 ‘귀무덤〔耳塚·이총’이 있다. ‘코무덤〔鼻塚·비총〕 ’이라고도 한다.

어린애가 울 때 “이비야가 왔다.”라며 행동을 금지하거나 멈추게 했던 이 공포의 언어가 그때의 왜군, 곧 귀와 코를 베어 간 사람이란 ‘이비야(耳鼻爺)’에서 왔다고 한다. ‘이비야’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온 일본 승려 게이넨(慶念)의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 나온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순경을 ‘이비야’라고 했다.   

이 같은 만행들로 이 땅을 피로 물들인 일본은 마침내 우리의 주권을 강탈 했다. 총칼의 무단 통치로 억누르고, 민족 말살 통치로 창씨개명은 물론 우리 말과 한글을 못 쓰게 했으며, 이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투옥하기도 했다. 

3·1 운동은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드높인 운동이었다. 그러한 민족정신은 말과 글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외국어로 얼룩진 말과 글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말은 신음하고 있다. 세계화란 미명 아래 ‘햇빛 마을’이 ‘선샤인 아파트’로 바뀐 지 오래고, 이름도 ‘로즈 김’에, ‘조리사’도 ‘셰프’에게 밀려나는가 하면, 방송 출연자의 귀를 때리는 ‘와이프’소리에 정든 ‘아내’가 우리 곁 을 떠나고 있다. 

광복 75주년, (칼로) 몸을 찌른다는 ‘사시미(刺身, 생선회)’, ‘지리(맑은탕)’는 물론, 일본 에도시대에 절에서 노름을 할 때 ‘판돈에서 떼어 절의 경비에 보태던 돈’이라는 ‘데라센(寺錢)’의 ‘데라(개평?)’같은 말은 아직도 남아 있고, 우리말과 섞인 ‘삐카번쩍’, ‘왔타리갔타리’들을 무심히 쓰고 있다.

외국어식 표현도 늘어났다. ‘입학식을 하다.’를 영어식의 ‘입학식을 가지다.’라 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를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 한다. ‘높이 평가 하다.’를 일본식의 ‘높이 사다.’라 하고, ‘축사를 갈음하다.’를 ‘축사에 갈음하다.’라 한다. ‘규정을 위반한’을 ‘규정에 위반한’이라 한 우리 법률 조항도 일본 어식 그대로 옮긴 잘못이다.

일본은 일본방송협회(日本放送協會)의 그들의 음인 Nippon Hoso Kyokai의 머리 글자를 따 NHK라 하는데, 우리는 Korean Broadcasting System의 머리글자인 KBS라 하고 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 했다. 21세기에는 세계 언어의 90 퍼센트 이상이 소멸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도 있다. 국어의 내일이 걱정스럽고 한글날이 부끄럽다.

고쳐야 할 말들  
영국이 신사 정신의 나라라면, 우리는 선비 정신의 나라였다. ‘선비’는 조선 시대의 지식인상이다. 꼿꼿한 지조, 강인한 기개, 굽힘 없는 정신력, 항상 깨어 있는 청정한 마음가짐이 특징이다.
현대의 실리주의적 가치관은 조선 시대의 가치 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절하있다. ‘명분(名分)’은 핑계로, ‘의리(義理)’는 깡패 용어로, ‘사기(士氣)’는 군대용어로 전락해 버렸다. 어지러운 시대다. 지식인들조차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시대에 맞춘 그 어떤 정신 지표를 정립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할지라도 ‘우리 정신’은 가져야 한다.

부산과 경남 지방은 우리말, 우리글을 위한 한글 연구와 한글 운동의 기운이 어느 지역보다 세찬 곳이다. 이러한 선각들의 정신은 오늘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저 해운대 동백섬의 에이펙 하우스를 세종(世宗)의 뜻인 ‘누리마루’라 하고, 향파 이주홍, 요산 김정한 ‘문학축제’를 ‘문학축전’으로 고쳤다. ‘축제(祝祭)’나 ‘-제(祭)’는 일본식 한자어로, 전통적 용어는 ‘축전(祝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에 번역한 ‘사회(社會)’나 ‘비행기(飛行機)’ 같은 말들조차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우리말을 보자. ‘반팔 옷’이란 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반바지’ 를 ‘반다리 옷’이라 하지 않는다. 신체적 결함을 연상케 하는 ‘반팔 옷’은 반 드시 ‘반소매 옷’으로 고쳐야 한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도 잘못이다. 불편이 나 염려는 ‘끼치는’ 것이지 ‘드리는’ 것이 아니다. 

“눈에 콩깍지 씌다.”의 ‘콩깍지’는 콩을 떨어낸 껍데기이므로, ‘콩꺼풀’이라 야 하고, ‘발자국’은 밟은 흔적이므로 ‘발걸음 소리’여야 한다. 일그러진 말은  이들만이 아니다.
어느 소설가는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쳐다본다’고 했다. 그러나 위를 향해 보는 것이 ‘쳐다보다’다. 택시를 탈 돈이 ‘택시삯’이요 살 돈은 ‘택시값’이다. 전란으로 인한 ‘피란’과 천재지변의 ‘피

난’은 물론, 초대한 ‘집들이’와 인사차 가는 ‘집알이’도 구별해 써야 한다.
‘민들레 씨앗’을 ‘민들레 홀씨’라 한 시인은 말이 없는데, ‘민들레 홀씨 되어’란 노래를 한 가수는 자신의 노래가 과학적 사실과 다르다며 공식 사과를 했다. ‘열무’는 ‘어린 무’다. 시어로 쓴 ‘열무꽃’은 ‘장다리무꽃’이어야 하고, ‘끝물’은 ‘끝’이 아니라 ‘맨 나중에 나는 것’으로 “참외가 끝물이라 맛이 적다.”로 써야 할 말이다. 

언론 또한 무관심하다. ‘국회의원 수’를 ‘국회의원 숫자’라 하고, ‘외국산’을 ‘수입산’, ‘희소병’을 ‘희귀병’이라 하며, ‘분쟁의 소지’를 ‘분쟁의 가능성’이라 한다. 불꽃축제’도 ‘꽃불축전’이어야 한다. 축하의 뜻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은 일본의 ‘하나비(花火)’처럼 ’꽃불‘이기 때문이다. 

천안의 독립기념관 건립문에는 ‘후손에게 전하고’가 ‘후손에 전하고’로 되어있고, 고성 당항포의 충무공 전적비에는 ‘빗발같이’ 가 ‘빛발같이’로 되어 있으며, 영도 해기사 명예의 전당 비문에는 ‘겨레’가 ‘겨례’로 되어 있으나 마음두는 이 없다. 

 

류영남(柳永南) 문학박사 · 전 부산한글학회장
류영남(柳永南) 문학박사 · 전 부산한글학회장

□ 아호 : 봄내
□ 본적 : 경남 남해군 서면 대정리
□ 학력 : 부산대학교대학원(문학박사), 진주사범학교(18), 남해중학교(7)  
□ 경력 : 부산한글학회장, 부산시 우리말 바로쓰기 추진위원    
         부산대학교 외래 교수,부산·경남 교육연수원 강사 등         
□ 저서 :『우리글을 바르게』(진주사범학교 재학 시), 
        『말글밭』(부산일보 5년 연재), 우리말 쓰기 / 적기의 바른길』등     
□ 수상 : SBS 교육상 / 부산 교육상 / 모범 공무원상 등
□ 동인 활동 :〈길〉 · 〈윤좌〉 
□ 비문 : 경남여자고등학교 교훈비, 이주홍 탄생 100주년 기념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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