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카페를 준비중인 엄마 배기연씨.
샐러드 카페를 준비중인 엄마 배기연씨.
세남매와 행복을 짓는 김광식·배기연 부부
세남매와 행복을 짓는 김광식·배기연 부부

우린 어쩌다 부모가 되었을까. 가끔은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아이가 정말 내가 낳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그런 찰나가 있다. 그런 찰나를 지나 전쟁 같은 아침 등교 시간이 되면 정말 내가 낳았다는 걸 부정하고 싶어지는 그런 찰나가 다시 온다. 어쩌면 육아란 책임과 감동, 사랑과 용서 사이의 끊임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아름다운 전쟁터가 또 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보물섬이 또 있을까. 이 아름다운 보물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도 애썼을 부모라는 이름의 사람들. 그들에게 매일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귀한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다.  <편집자 주>

“기억이 통조림 안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약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영화 ‘중경삼림’의 대사다. ‘만년청’을 키우던 남해 청년 김광식 씨 역시 그런 마음이었을거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포슬린 아트’를 배우러 우연히 들른 공방에서 만난 연인 ‘배기연’ 씨를 만났을 때 말이다. 그런 그들은 2011년 9월, 각각 서른과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9년이 지난 지금 9살 아들, 8살 딸, 6살 아들 무려 3남매의 부모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독특한 식물을 키워 팔던 광식 씨였으나 부침이 심한 업종이라 최근 농장을 접고 순천시의 한 건설회사에 취직해 바다를 메우는 일을 타지에서 하고 있다. 홀로 남해에 남아서 세 아이를 돌보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샐러드 카페를 준비하고 있는 배기연 씨를 만났다.

첫 아이를 낳아 보니 그 책임감이 엄청났다. 육아는 책임과 의무의 향연이었다. 기연 씨는 남편을 설득해 진주의 비뇨기과에 보냈다. 곧장 병원에서 나온 남편 광식 씨는 “의사 선생님이 할아버지였는데 애 하나라고 하니 수술 못 해 준다”며 쫓겨나왔다고. 인연이었던지 연년생으로 곧장 둘째 딸이 생겼고 이어 셋째인 아들까지 선물로 왔다. 셋을 씻기고 어린이집 등원시키는 아침은 그야말로 한바탕 난리였다. 본인은 절로 엄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첫 아이 낳자마자 남편을 비뇨기과 보냈던 사연

기연 씨는 “솔직히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땐 그 할아버지 의사가 원망이 됐다가도 애교 짓을 할 때는 ‘고마운 할배 의사’ 이러며 일 년에 백번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며 엄마 미소를 보였다. 셋 모두 20개월씩 터울이 나는 아이들, 7세까지 10만원의 아동수당이 나오는데 그마저 이제 첫째, 둘째는 지원이 끝났다고 한다. 다행히 작년부터인가 셋째 자녀부터는 15만원이 추가로 나와서 현재는 셋째 아이 덕분에 총 25만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부부는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굳게 믿고 사교육은 지양하겠다는 교육관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들어가는 교육비는 60~7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저렴하다는 학습지와 미술학원만 가는 데도 그렇다고. 특히 첫째가 한자를 너무 좋아해서 한자를 시작으로 중국어까지 하는데 엄청 좋아해서 ‘이렇게나 좋아하는 아이에게 돈 없다는 이유로 너무 늦게 시킨 것 아닌가’하는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고 ‘미술학원 가는 요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둘째’를 보면서 학원비를 줄여보려고 했던 마음도 고쳐먹었다고. 이렇듯 아동수당은 고스란히 교육비에 투입되고, 세 자녀와 함께 키즈카페나 외부로 외출이라도 할 경우엔 간식비와 체험비가 무시 못 할 금액이라고 한다.

사교육 셔틀 깰 수 있도록 ‘공동육아돌봄센터’ 절실

사교육은 줄이고 공교육 안에서 최대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기연 씨. 하지만 방과 후 돌봄교실까지 적극 활용해도 오후 5시면 모두 정지된다. 학교 셔틀버스가 없기에 등교는 물론 하원까지 다 본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교육 않고 최대한 학교에서 뭘 하네 해도 부모가 일할 경우 사교육비는 어쩔 수 없겠구나를 여실히 느낀다. 사교육으로 셔틀을 돌리지 않으면 부모의 일하는 시간과 아이 시간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녀는 “방과 후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 아이들에게 간식이나 간단한 저녁 정도를 챙겨주면서 함께 돌봄이 가능한 공적인 기관이 있다면 좋겠다. 월 이용료를 내더라도 사교육비 보다 적은 금액이라면 충분히 수긍되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엄마들도 경력단절을 막고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방이’와 믿고 갈 수 있는 어린이 치과

슬라임 등 각종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늘지 초콜릿과 젤리 등 아이들 먹거리는 갈수록 더 달고 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충치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기연 씨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어린이 치과”라며 “예약 잡는데도 최소 한달이고 ‘웃음가스’다 뭐다 하면서 치료비도 10만원 넘기는 건 다반사다. 이에 7살 정도 지나면 일반 치과라도 가고 싶으나 어린이 치료를 반기는 치과도 찾기 어렵다”며 호소했다. 이어 “세 아이와 종일 집에 있는다고 하면 엄마도 스트레스, 아이들도 괴롭다며 주로 ‘바람흔적미술관, 나비생태공원, 양떼목장’등을 가는데 이마저도 하도 많이 가니 식상해 한다”며 “남산 ‘아이나라 놀이터’에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해서 일명 방방이라 불리는 널찍한 실내놀이터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육아는 책임’이라는 기연 씨는, 기왕 받은 선물이라면 기쁘게, 바르게 잘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살았다’며 하소연할 때 슬펐다. ‘누가 날 낳으라 그랬나’며 따졌던 철없던 내 모습도 미웠다. 세상에 던져진 자녀도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부모 역시도 뭘 계획해서 된 게 아니란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며 “기분 좋은 책임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강한 책임감으로 맺어지는 게 부모-자식 사이 같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나를 살렸구나’ 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 이 마음이 우리 또한 살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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