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지인 한 분이 남해를 방문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경북 군위군 향토사 연구소 소장으로 그가 일행과 함께 갑자기 남해를 방문한 것은 일연스님과 고려대장경 판각지에 관하여 몇 가지 사안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경북 군위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일연스님께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장소이기도 하여 군위와 남해 공히 일연스님과 연관된 지역인지라 이날 대화는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일행은 시종 유의미한 덕담을 나누며 김봉윤 남해안 역사연구소 소장의 안내로 대장경 판각 지 몇 곳을 답사하기도 하였습니다. 

필자가 남해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고현면 일대에 이렇게 훌륭한 사적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자는 마음을 나누는 칼럼을 쓰는 사람이 뜬금없이 웬 역사 이야기를 하느냐고 일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무할지라도 생전에 한 인물의 밝은 영혼이 승화하여 한층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사실을 접할 때면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감성은 경쟁과 약육강식이 심화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만약 인간의 정신을 살찌울 문화적 소산이 있다면 그 위대한 자취를 통하여 우리의 정신을 밝힐 동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을 유추하면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탐구하는 일도 삶의 근접성에서 항상 현재 이 순간의 순수 경험과 동일한 맥락에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 개체 생명은 우주 생명의 최초로부터, 성품의 본래로부터, 의식과 무의식의 최초 입자로부터, 내면과 외연으로 달구어질 기세로부터 다시 태어나 각자(覺者)의 길로 세상을 아름답게 여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체 생명의 순환이 현재 지구상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주인인 나에게로 연결되어 있고 나의 주체에서 파생된 생명의 이어짐으로 후손을 낳고 그 후손이 또 후손을 낳으니, 어느 시기인들 이러한 연원에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까? 

우리가 먹는 자양분인 자연 생명이 성장을 도모하는 데 어느 누가 최초로 심었을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의 작용이 전체 나무를 살아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지의 변천 또한 생성과 소멸의 생성작용으로 오가는 이치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대자연 생명의 살이라 할 육신이 분해되어 뒤섞인 흙은 생명의 성장을 도모함은 물론 항시 일정하게 작용하는 햇볕과 바람 그리고 물과 바람과 공기 역시 생명이 순환하는 원칙에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개체 생명은 모두 하나의 큰 생명의 흐름에서 부분과 전체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큰 나 속의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일러 인도의 성현 크리슈나무르티는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 속에 있습니다. 그보다도 모든 것이 나의 안에 있습니다. 무생물도 생물도, 산이나 벌레나 호흡하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안에 있습니다. 나는 광명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진리의 열쇠는 “자신 안에 있으며 자기 응시를 통한 자기 인식 속에서 만이 시간에 예속하지 않은 영원하고 불멸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로 통한다, 하나로 이을 현장의 최대 시점인 지금이야말로 전체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가장 절정에 이를 역사의 분기점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이요 오늘보다 더 나아질 내일의 역량이 펼쳐질 지금이라는 시점도 머지않아 미래 시대에 남겨질 과거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더욱 찬란히 빛을 발하였을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 오늘 이 시대에는 왜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남아서 돌아가지 않는지, 이미 우리 곁에서 떠나버린 고귀하고 아름다운 흔적이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는 것입니다. 
결국 보이고 나누어지는 외연의 모습으로 기록될 역사의 참모습은 보이는 현상 뒤에 남겨진 외면할 수 없는 순수영혼을 찾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시대에 남겨진 문명의 사슬이 인간의 영혼을 고립시키고 아름다운 본성을 침하시킬 태세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더욱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인물의 순수한 열정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 이리도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아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되새겨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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