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해서 각자 아이 둘씩 키우고 있는 엄마 윤소리 씨와 최윤정 씨(오른쪽)

한 번쯤 그런 꿈 꾼 적 있지 않나. 아랫집 윗집에 친한 친구와 사는 꿈. 결혼해서도 친한 친구끼리 같은 동네, 이웃집에 살자며 손가락 약속하던 순수한 시절의 꿈 같은 것 말이다. 여기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실제로 친구네의 귀촌으로 다른 친구네가 귀촌해와서 이곳 남해에서 그중에서도 같은 삼동면에서 이웃 주민으로 살아가는 엄마들이 있다. 

삼동면 물건마을의 최윤정 씨와 삼동면 지족 옛 거리의 윤소리 씨다. 각각 서른일곱, 서른넷으로 남해군에서는 귀하다는 청춘이기도 하며 그야말로 젊은 귀촌인이다. 윤정 씨는 8살, 5살이 된 두 딸을 키우고 살며 소리 씨는 6살인 아들과 3살인 딸을 키우고 살고 있다. 

아이 둘, 네 식구씩 총 여덟 명, 귀촌한 두 가족 이야기

윤정 씨가 귀촌도 그렇고 육아도 먼저 시작한 선배이다. 프리랜서 인테리어 목수 일을 하는 남편과 남해로 귀촌한 지 벌써 만 4년째 접어드는 윤정 씨는 “바라보는 남해가 아니라 어딜 가나 발을 담글 수 있고 걸어나갈 수 있는 바다가 특히 좋아 살던 통영을 떠나 남해로 왔다. 남해 와서 둘째 딸 연아를 낳았으니 남해가 더 각별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친한 소리 씨에게 매번 남해에 대한 매력을 연발했다고 한다. 너무 남해가 좋아서 물건마을에 대출을 받아 남편이 1년 넘게 손수 지은 집에서 지금은 4식구가 도란도란 살고 있다.

윤정 씨는 “산청대안학교에서 영어교사인 소리와 농업교사였던 진하 씨가 남해 와서 이웃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정말 많이 했다”며 “꿈이 이뤄져 이들 부부가 남해로 귀촌하게 되면서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내가 되었다”며 웃었다.

소리 씨 또한 “자연양계 등 유정란을 키우고 여러 농사에도 관심이 많고 낚시도 좋아하는 남편이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니 시골 가서 작은 파스타집을 열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귀촌 시기가 예상보다 확 당겨졌다”고 말했다.

부부 외에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게 버겁다

지족 거리에서 파스타집, ‘씨이너볼(sea in a bawl)’을 열고 생애 최초로 도전해본 자영업의 세계, 특히 육아와의 병행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 씨는 “주말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게 항상 미안했다. 아이들이 여유 있는 시간은 주말뿐인데 관광지다 보니 주중엔 정말 손님이 없고 주말 장사를 부부 둘이서 꼭 해야만 월세라도 맞출 수 있으니 주말을 포기하는 건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다 보니 도리가 없다”고 했다. 
또 “해보기 전엔 자영업자가 자유롭겠다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영업시간이라는 게 불특정 다수와의 ‘공적인 약속’인 것이니 가정과 우리 일을 양립하며 지켜가는 게 훨씬 치열했다”고 한다. 남해여성회의 고마운 ‘아이돌봄’ 제도를 활용해 주말에는 도움을 받는데 그마저도 아이가 아플 때나 아이 컨디션이 난조일때는 어렵다. ‘개인 사정으로 문 닫습니다’의 9할은 아이 돌봄 문제인데 일일이 손님들에게 구구절절 말할 수도 없고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병원은 타지인 사천시에 속해 있는 삼천포 소아과다 보니 아이가 아프면 전날 밤부터 ‘내일 아침 눈 뜨자마자 운전해서 대기순번 빨리 배정받아 치료받도록 해야지 하며 예상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보면 이미 그때부터 전쟁치루는 기분’이라는 소리 씨의 이야기다.

아이들끼리 걸어 다니며 친구 되어 놀 수 있는 ‘마을 놀이터’

남해가 좋아 귀촌했으나 아이가 커갈수록 아쉬운 부분이 점점 보인다. 특히 ‘놀 공간, 놀이터’를 꼽았다. 자연과 마을, 이웃과 마을 길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자 시골살이를 선택했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는 것. 
윤정 씨는 “사시사철 매일 바다만 데려갈 순 없지 않나. 평소 놀 공간과 친구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나이가 좀 차이 나도 금방 친해지는 친화력이 있다. 꼭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 하지 않아도 마을 안에 놀이터가 있으면 자연스레 놀러 나온 다른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쓱 걸어가다가 놀이터에 슬쩍 들러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꼭 있어야 할 공간인 셈”이라며 “각각이 점처럼 사려면 도시가 편하지 왜 굳이 시골에 왔겠나. 아이들도 친구가 필요하고, 엄마들도 친구가 필요하다. 스마트폰 보지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갈 공간, 놀 공간을 만들어주고,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 한 명과 놀이터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데도 둘이서 같이 뛰어다니며 ‘시골 아이’다운 로망을 발휘하면서 잘 살지 않겠나? 남해읍에 국한될 게 아니라 면에, 마을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골에 살다가 읍으로 나가고 결국 도시로 떠나는
“물건중학교가 마을 한중간이다. 거기 운동장을 놀이터 겸 공원으로 꾸미면 마을이 풍성해질 것”이라는 윤정 씨. “물건숲의 놀이터는 이미 버려지고 방치된 지 오래다. 그네는 녹슬어 있고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다. 이 놀이터만 잘 정비하고 아이와 어른의 쉼터를 약간만 조성해도 물건숲이 얼마나 좋은데 관광객과 지역민이 즐겨 찾는 명소가 왜 안 되겠는가?”
소리 씨와 윤정 씨는 꽤 미안한 부분이라 가급적 서로의 아이를 부탁하진 않으나 ‘비상사태엔 맡길 곳이, 맡길 친구가, 지인이 있다는 게 굉장히 큰 힘’이라고 말한다. 이어 남해에 와서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필요를 파악해보면 자연스레 귀촌인구는 늘 것이라고 한다. 고령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 위주의 정책만 펼 게 아니라 하나의 건물을 짓더라도 ‘노인회관’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여러 세대가 같이 머물고 어울리는 공간으로 설계해보면 사람들이 더 모일 것이라 말한다. 왜 대규모 사업, 큰 무언가에만 집착하는지, 소규모의 마을에, 작은 공간부터 개선해 나갈 때 ‘인프라 찾아 읍으로 나가고, 결국 도시로 다시 떠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지 않겠나며 ‘남해 사는 아이 엄마’ 목소리를 나지막이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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