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시인이 있다. 스스로를 미미한 사람이라 일컫는 ‘나는 지푸라기 같은 글을 쓰는 지푸라기 같은 시인임을 깨닫는다’는 여리여리한 시인. 그녀는 2014년 여름, 남편과 반려견 키키와 함께 삼동면 물건마을에 귀촌해 시를 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공식적으로는) 다섯 번째 시집인 ‘보드라운 그림자’를 지난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발간했다.

총 41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번 시집은 2019년 한 해 동안의 습작의 열매들이다. 류혜란 시인은 “한 해 동안 쓴 시를 엮어내자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매일 조금씩 써왔는데 여름 즈음에 마음이 극에 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글을 많이 못 썼다. 그래서 어쩌면 결과물을 내기 힘들겠다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가을 즈음부터 서서히 회복되면서 소박하지만 이렇게 엮어낼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류 시인은 “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아픔을 겪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릴 때부터 많이 말로 인해 상처받고 어그러지기도 했다는 걸 직시했다”며 “제 생각에는 저를 비롯해 사람들이 사랑으로 했던 말들에 어떤 이들은 상처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말에 가시가 있었다는 걸 발견하면서 말에서 ‘가시뽑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남편 이숙번 씨가 그녀를 위해 만든 출판사 ‘몽당’을 통해 2014년 시집 ‘미미한 사람’을 시작으로 2015년엔 ‘미’ 2017년 ‘여전히 아픈 아침’, 2018년 ‘풀소리’를 내는 동안 남해에서 ‘정성스런 삶’을 이어온 시인의 모습에서 ‘천천히 사는 시간’을 본다. 

류혜란 시인은 “우리가 겪는 고통이나 슬픔을 무턱대고 배제하고 사는 것보다 그 어둠속에 서서히 들어가 들여다보면 그러한 삶의 어둠이 외려 살포시 감싸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속에서 불완전한데 더 온전 해지는 듯한, 그림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며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보드라운 그림자’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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