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누구나 제일 잘 부르는 애창곡 18번 한두 곡은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긴 하나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리기도 합니다. 

특히 요즈음처럼 생존경쟁이 심화한 사회에서 기분을 전환하거나 심신을 새롭게 할 방편에서 노래보다 더 의미 있는 장르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 듣는다, 반응한다, 소리를 낸다, 공감한다, 감성을 자극한다, 에너지를 불어넣는다는 차원에서 노래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활력소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흥분, 발산, 쾌감, 열정, 차분, 안정, 기쁨이 교차하는 에너지를 마음으로 느끼고 조율하면서 생각과 감정을 점검하고 살펴보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도 노래를 통하여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고 숨겨진 상처를 만회하려는 열망이나 그만의 애환, 분노나 두려움을 함께 표출하기도 합니다.

특히 과거 유아 시절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상태에서 노래방 같은 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나만의 시간으로 독식하려 하거나 자신의 열창에 반응을 기대하려는 뉘앙스는 숨겨진 욕구를 향한 투영일 수도 있습니다. 칭찬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슴 속에 담긴 완전한 사랑에 대한 열망이나 나의 감성을 밝히려는 심사(心思)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 외침입니다. 

노래는 사실 영혼의 울림입니다. 이 울림은 우주 만물 속 일체 생명과 교감할 수 있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생동감 있는 자연의 노래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한편의 교향악입니다. 꽃과 새들에게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끊임없는 축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 달 그리고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가장 낮은 소리에서 가장 높은 소리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축복과 환희의 연속입니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랫소리에 수만 명의 청중이 열광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노래가 소리와 파동, 에너지와 입자로서 영혼이 성장할 양분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그 내밀한 정서를 다만 유흥의 일단으로 지나치게 하고 말 것인가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노래는 단순히 흥을 돋우는 측면보다 존재 깊숙이 들어있을 잃어버린 본성을 찾기 위한 열망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본성을 찾는 여정에서 천지의 만물이 노래하며 생명의 감성을 전하는 사이 그 진지한 음률은 하나의 울림으로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기탄잘리 즉 ‘신에게 바치는 노래’를 통하여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를 타고 출발하여 수많은 별과 행성들에 자취를 남기며 광막한 우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며, 가장 단순한 곡조에 이르기 위해 가장 복잡한 시련을 거쳐야만 합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집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침내 가장 깊은 성소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바깥세상을 헤매 다녀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하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고도 오래 헤매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의미로 보면 일정한 음률과 반복되는 진언(眞言) 속에서 의식을 다지는 안배 역시 엄정한 수행의 한 측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문학의 패러다임이나 장르도 다양해져 시를 노래로 부른다거나 자신을 향한 노래를 작곡하여 의식을 드높이는 데 활용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소리 파동의 적정성은 전체 생명에게 유익한 에너지(긍정성, 심신 이완, 의식의 상승, 감사와 사랑의 화음, 믿음의 내면화)로서 자리매김하기에 우리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고루한 마음을 더욱더 높은 의식으로 이끄는 데 한 가지 믿음을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행운이 온다든가 이 노래를 부르면 안 풀리던 문제들도 저절로 풀려진다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라 칭할 긍정적 믿음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밝힐 지렛대라는 점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흘러가는 유행가도 좋지만, 나의 애창곡 18번을 하루 몇 번씩 불러봄으로써 삶의 귀감이 될 믿음을 다시 가슴에 담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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