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면 출신 향우들의 요청으로 이광진 수원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단장을 만났다. 이 단장의 고향은 창선면 수산리이고, 3남2녀 중 차남이다. 아버지(이재남)는 2년 전에 작고하셨고, 어머니 채희덕(90) 여사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출신학교로는 창선중, 용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검찰에 투신해 정년 1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약력을 말씀해주십시오.
“삼성전자에서 5년 근무 후 사법시험 31회에 합격했으며, 대구, 천안, 서울중앙, 성남, 전주지검에서 검사로, 일본 중앙대에서 1년간 연수, 광주, 서울동부지검에서 부부장검사로, 청주 제1부장, 전주 제1부장, 의정부지검 제1부장검사로 근무하고, 그 후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 충청남도 파견 법률자문검사를 거쳐 현재는 수원지검에서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단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단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금오공고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서울 이모부의 권유로 진로를 바꾸어 서울 용산고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시 사법시험 공부 중 유신철폐 데모를 보면서 고시공부를 중단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1987년 직선제 개헌소식을 듣고 퇴사하여 다시 2년간 공부 후 동기들보다 7~8년 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기업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선지 지금까지 주로 경제분야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법무부장관 표창과 검찰총창 표창 수상 경력이 있다.

▲검사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일화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광주에서 대입수능 부정사건 조사단의 주임검사로 밤늦게까지 일하던 때가 기억나고, 대구 초임시 가짜 이광진 검사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고 하여 중학교 동창과 함께 잡으러 다니던 일, 퇴근 후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저를 알아보고 ‘검사님 저 모르겠어요? 검사님이 저를 구속시켰잖아요’라고 해 순간 긴장했는데 ‘그후 교도소에서 많이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어 이제 택시기사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으니 검사님께 감사드립니다’고 말해 한숨 돌린 일 등이 기억납니다.”

▲창선인들과 창선중고교 동문들의 두터운 기대와 신망을 받고 계신데 그들에게 한 말씀 하시면.
“모두 가난했지만 불행한지도 잘 몰랐던 어린 시절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재경창선중고동문회 등 모임에 가능하면 참석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쉽고, 이제는 고참급 선배가 되었는데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남해군 각 읍면 중에서도 제일 단합이 잘되는 창선인들이 앞으로도 더욱 화합하고, 건강하고 행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고향 남해와 창선의 추억담을 들려주시면.
“창선 섬에서만 살고, 남해읍에는 태권도복 맞추러 한번, 육지는 6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진주 촉석루 간 것 한번 뿐입니다. 모범학생으로만 지내다가 중3 소풍 때 몇 명이 몰래 빠져나와 농구하고 잘 놀았는데 다음날 담임에게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아 멍들었던 일이 잊히지 않고, 중3때 재경남해학우회 주최 학력경시대회에서 중학교는 제가 1등, 고등학교는 형이 3등을 하여 형제가 시상대에 선 기억도 납니다. 그 외는 산으로 들로 꼴 베고 나무하러 다니던 일, 초등학교 때 배급받은 빵이 너무 맛있었던 생각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남해군의 발전방향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명문학교와 건실한 기업을 유치하여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활력이 넘치는 남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구 감소로 장차 남해군이 소멸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리는데 남해 출신 모든 향우들과 전 군민들이 힘을 모아 시급한 인구문제도 해결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알리는 관광자원도 개발하여 고향 남해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단장은 외국계 제약회사의 임원인 아내와 회사원인 두 딸과 함께 서울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