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말간 사람이 있다. 

몰랭이라 불리는 설천 금음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 건축학도로 출발해 국문학도에 당도한, 시로 느리게 집을 짓는 남자. 시금치 농사와 마늘 농사로 땅과 땀의 귀함을 알고 남해성당의 사무장으로 신실한 믿음을 묵묵히 한 글자 한 글자 기록해 가는 남자. 바로 문성욱 시인이다. 

그가 등단한 건 2003년, 근 16년 만에 그 의 시 ‘보고서’이자 그의 생이 담긴 ‘자화상’ 같은 시집 <앵강만>이 출간되었다. 

지난 10일, 드디어 첫 결실 같은 시집이 당도하자마자 본지로 연락을 주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나가 시집과 함께 시집을 든 그의 부지런한 손을 만날 수 있었다. 시를 먼저 봐 주었으면 한다는 간곡한 부탁으로 얼굴 사진 찍기는 한사코 거절하던 시인은 시집에 대해서도 “느린 걸음이지만 새벽마다 일어나 시를 생각하는 시간이 차곡하게 모여 이제야 한데 묶어 볼 수 있었다”며 소박하게 말한다. 시집에는 문 시인의 삶의 흔적이 담겨져 있다.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건축설계에 관심이 많았던 문 시인은 3년가량 건설현장에서 건축기사로 일했다. 좋은 집을 짓겠다는 꿈이 늘 자리했던 터라 ‘문이 보인다’, ‘철거할 수 없는 집은 다시’, ‘나무의 결은 벽이 되어’와 ‘다시 집을 짓고’ 등 건축과 관련된 시가 많다. 이후 아버지의 별세로 말미암아 효심으로 내려오게 된 남해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품으며 글을 썼고, 뇌경색과 치매를 앓던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삶, 2014년 어머니가 별세하기까지 살뜰히 봉양한 삶의 궤적 또한 그의 시 ‘풍경그리기’나 ‘시금치를 캐면서’, ‘마음의 빈방’ 등을 통해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었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는 동안 문성욱 시인은 집을 짓듯, 그리움의 풍경을 지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 찾듯 가만히 시를 써왔다. 

문 시인은 “앵강만은 경치도 좋지만 말의 어감 또한 좋다. 이제는 앵강만처럼 부드럽고 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며 “곁에서 한결같이 독려해주는 옆지기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남해의 풍경과 착한 모습을 잘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가고 싶은/ 고갯마루, 금산 가는 길목/ 잿빛 안갯속, /자리 떠나지 못하는 나무와/ 새하얀 풍경의 숲/ 솔바람의 노래//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고/ 마음으로 기도하던/ 앵강 고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가야 할 길에 진눈깨비/ 진눈깨비// <시 ‘앵강고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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