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눈이 막 올 때는
두 소년이 생각난다

어느 해 어느 날인지는 
가마득해 잊었지만
땔감을 사러 보육원에서 
트럭이 온 날이었다

산 밑 우리 집에 따라와
땔나무를 싣던 두 소년

트럭 짐칸에 타고
굵은 눈 속으로 멀어져간
두 소년은 나와 또래라 했다.

‘두 소년’ 문태준 作

문태준 시인의 ‘두 소년’이라는 시다. 코끝이 찡해지는 이 겨울 낭송해보면 눈발에 땔감을 들고 서 있는 또래 소년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런 시다. 문태준 시인은 이 시 속의 두 소년이 당시 열 서넛 살 정도 되었던 것 같다며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으로 쓰게 된 두 소년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는 시 ‘가재미’로 널리 알려진, 2019 정지용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문태준 시인이 지난 4일, 보물섬 남해에서 들려준 이야기 한 꼭지다.

화전도서관 다목적홀에서 열린 <함께 읽는 남해, 행복한 보물섬> 독서강연의 세 번째 강연자로 찾은 것. 이날 문태준 시인은 본인의 대표 시들을 중심으로 해석해가면서 ‘내 안의 시인을 깨워라’는 주제 아래 시 창작을 강의했다. 이날 문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도 산골짜기에서 살았다. 무척이나 가난했었고 작은 동네였기에 전교생도 적었다. 고등학교 진학 이전까지는 교과서 외에 독서경험 자체가 없었다. 다만 봄 산을 뛰어다니고 소나 염소를 풀 먹이러 데리고 다니던 일, 또 여러 짐승을 키우고 돌본 일이 무엇보다 좋았다. 송아지 태어나는 것도 보고 죽은 짐승을 산 밑에 묻어도 보면서 뭐랄까 생사의 순환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랐던 게 참 좋았다.

자연이라는 공간 속에서 뛰놀던 그런 경험들이 시간 속에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호출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벗어나려는 욕망으로도 나타나 시 곳곳에 녹아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또 그는 “시가 잡는 풍경이 있다. 시는 활동을 잡는다. 시가 붙잡는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시가 됨직한 잔상이나 여음을 보는 거다. 올해 봄에 정지용문학상을 받고 다소 시 쓰기에 부담을 느꼈다. 고민의 시간도 좀 길어졌던 것 같다. 25년 전 등단하고 그간 7권의 시집을 내면서도 여전히 첫 행, 첫 단초의 시작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의 대표시로 꼽히는 ‘가재미’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제 나이 삼 십 대 중반쯤에 쓴 시다. 큰어머니께서 김천의료원에서 암 투병을 오래 하시다 결국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큰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거의 석 달 정도를 매일 새벽마다 큰어머니 생각을 하며 있었는데 어느 새벽 확 쏟아지듯 나온 시가 ‘가재미’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어머니는 늘 가난한 우리 오남매 걱정을 해주시던 제겐 굉장히 각별한 분이셨다. 몰래 우리 집 정지(부엌)에 오셔서 빈 솥 한가운데 늘 먹을 양식을 두고 가셨고, 어머니, 아버지가 일로 집을 비우면 늘 우리 남매들과 같이 있어 주고 평생 남의 말 험담하는 일이 없으셨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시에 얽힌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김천장에 가서 하얀 토끼 두 마리를 사 와서 기른 이야기, 아버지께서 아픈 염소를 따뜻한 재로 이불 삼아 덮어주던 이야기, 기찻길 위로 펼쳐진 동네 어르신들의 부부싸움 등 다양한 삶의 장면을 들려주었다. “시간에 대해서도 콕 찍어 2시, 3시가 아니라 ‘감꽃이 필 때와 감꽃이 질 때’처럼 시간을 하나의 현상에서 다른 현상으로, 그 사이의 결로 생각해보기도 한다”며 “주로 새벽에 작업을 한다.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해 질 무렵과 해 뜰 무렵이다. 새벽 3시 반 정도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3시간 정도 차도 마시고 시집도 보고 클래식도 들으며 시를 생각하고 쓴다”고 말했다.

끝으로 문 시인은 ‘바다의 모든 것’이라는 시 이야기를 하다가 “저는 내륙에서 살았기에 바다라는 공간이 익숙하지 않았다. 예전에 초등생 백일장 심사로 통영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의 시가 제 것보다 월등히 좋았다. 바닷가에 있는 아이들에겐 바다에 관해 시를 써보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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