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1일(6일차)
아침 8시 Deurali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했다. 다들 산뜻한 기분인데 어젯밤에 종준형이 이 지역 남자 마사지사를 불러 일행들에게 그동안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마사지 서비스까지 베풀어 대원들은 다 고마워한다.
가는 길에는 수백 미터 벼랑 위에 석꿀이 달려있고 산양도 바위에 나타난다. 3년 전에 벼랑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져 트레커들의 길을 막고 있다. 고도가 3,400m라 벌써부터 일행 중에는 고산증으로 두통과 속이 미식거린다고 하니 예감이 안 좋다. 드디어 MBC베이스캠프(3,700m)가 멀리서 보이고 KT에서 건립한 Nepal Anapurna Rescue Center가 보인다. 
안나푸르나에 한국의 KT에서 건립한 구조센터가 있다는 것과, 수많은 나라의 트레커들이 오가는 MBC베이스캠프 앞에 있다는 것은 그 자부심을 떠나서 그만큼 한국인들의 도전과 야망이 살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오전 11시20분에 전 대원들이 Machhapure 베이스캠프(3,700m)에 도착하여 캠프마당에서 쾌청한 햇살과 하얗게 눈 덮인 설산을 바라보면서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한 끼를 더하니 그냥 여기서 머물고 싶어 한다. 대원들은 Machhapure를 배경으로 마지막 배경일지도 모를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장 멋진 포즈를 화면으로 남긴 후, 12시30분경 최종 목적지인 ABC를 향하여 인간 한계를 이기기 위한 도전의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다 고산증 증세로 인하여 전진하는 발걸음도, 숨도 가쁘게 내쉰다. 그래도 가야만 하기에 서서히 나아가니 비가 내린다. 판초우의를 입으니 진눈개비로 바뀌더니 짙은 안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게 해 전방이 보이질 않는다. 기온까지 급강하니 추위가 매섭고, 설상가상 바람까지 매서워 대원들은 당황함이 역력하다. 얄궂은 변화무쌍한 안나푸르나의 매서운 기운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오르고 또 오르니 마침내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안나푸르나 ABC캠프(4,130m)에 대원들 전원이 2시50분경에 안착하였다.

해냈다는 환희보다는 그 동안의 험난한 여정에 울었고 그 성취감에 포옹하며 서로에게 축하를 건네며, 가이드 린지씨는 재빨리 셔터를 재빠르게 누른다.
캐나다에서 온 일행들은 환희의 춤을 추고 있다가 나에게 묻는다. 어디서 왔느냐고 해서 South of Korea라고 했더니 자기 아들이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는데 한국의 아가씨와 사랑에 깊이 빠졌단다. 그 사랑이 결실을 이뤄 자기 며느리가 되어 지금은 캐나다에서 신혼살림을 차렸고 한국며느리는 너무 착하고 예의 바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박미선 국장은 벌써 이들과 음악에 맞춰 국적을 초월한 기쁨의 순간을 댄스로 캐나다 일행들과 나누며 감회와 흥분의 순간을 연출해 내고 있다.
오후 3시경 일행들은 ABC캠프 내의 식당으로 들어가 먼저 추운 몸을 포터들이 준비한 따듯한 차로 녹인다. 몸을 추스른 후 롯지에 여장을 풀고 나니 일행 중 종준형은 표정이 심상찮다. 고산증으로 인하여 두통약과 핫팩을 있는 대로 사용하고도 더 달라고 야단이다. 미경 총무를 찾아가서 두통약을 주었다.

ABC캠프 언덕 뒤에는 안나푸르나 정상을 도전하다 아깝게 꿈을 이루지 못한 영혼들을 모신 탑들이 보인다. 특히 2011년 대한민국의 故 박영석 외 2인이 안나푸르나 남봉 8,091m를 도전하여 거의 찰나의 순간에 안나푸르나의 별이 되어버린 검은 탑에는 그 아픔을 감싸기라도 하듯이 태극기가 수 없이 둘러져있어 그 날의 아쉬움을 못내 펄럭이는 듯하다. 지금까지 여기를 찾았던 한국인들의 가슴을 뭉클케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또 옆에는 2012년 안나푸르나 주봉에서 천상의 꽃이 되어버린 한국의 산악인 故 지현옥의 탑에도 슬픔을 안은 태극기가 그 날의 아픔을 절규하는 것처럼 못 이룬 한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뒤로 한 맺힌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을 보니 도전하는 인간의 한계와 자연이 허락하는 한계가 어디인지를 저 봉우리들만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하고 동토의 언덕을 내려온다.
ABC 롯지의 환경은 열악하기가 딱할 정도이다. 전기는 밤 6시가 되어 들어오고 밤 12시에는 단전이다. 물도 안 나온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온기를 뺏기고 두통이 심해서 종준형과 재홍형의 고통을 옆에서 보는 전 단장님과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새벽 2시30분 종준형과 화장실을 같이 가는데 온통 사지가 떨리고 재홍형은 얼굴까지 새파랗게 변해간다. 예감이 무섭다. 두 분 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자 일행과 롯지가 달라서 이른 아침에야 알았는데 여성대원들도 엄청난 고통의 밤을 보냈는데, 여성대원들은 그래도 고통을 이겨낸 그 인내가 어머니보다 강했으리라 감히 혼자서 상상해 본다.

-10월22일(7일차)
잠을 설친 일행들 모두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하산만이 살길이라고 외쳐서 오전 7시40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고산증에다 추워서 ABC 베이스캠프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한 일행만 간단히 사진을 찍고 곧 바로 하산을 서두른다. 일행 중 미경 총무가 돌부리에 넘어져 얼굴과 팔에 찰과상을 입어 간단히 치료 후 바로 서두른다. 고도가 3,700m로 낮아지니 일행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하산길을 재촉하여 데우라리에 오전 11시에 도착하여 중식 후 다시 12시에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후 5시에 뱀부에 다시 도착하여 오늘은 8시간 트레킹을 하였다.

인간이 정복한 최초의 8,000미터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일봉 8,091m 마추피추레, 안나푸르나 남봉, 팡봉, 히운추리, 타두출리 강가푸르나 등 아름답고 웅장한 히말라야를 푼힐전망대 보다 더 가까이서 하산하면서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저녁메뉴는 빠른 하산과 하루에 거의 1,900m까지 고도를 갑자기 낮추었기 때문에 주방팀에서 특별히 신경을 기울인 만찬수준의 메뉴이다.
특히 이지역의 뱀부(죽순이란 뜻)의 이름에서 말하듯 부드럽고 쫄깃한 닭갈비를 겸한 죽순요리가 일품이었다. 이제는 나름의 여유가 생겨 두통도 다 사라지니 그동안에 문명의 이기에서 잠가두었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만 역시 통신은 단절이다.

-10월 23일(8일차)
새벽의 구름 한 점 없었던 기운이 아침까지 이어져 아마도 오늘은 더운 하산길이 예상되며 오전 7시35분에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또다시 스틱을 잡는다.
이제는 대원들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도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일행보다 먼저 출발하여 선두의 종준형을 쫓아가는데 운 좋게 가는 길에 10여 마리의 원숭이들이 길을 막고 두목원숭이가 술래가 되어 숨바꼭질하는 멋진 장면을 카메라 잡았다고 자랑했다. Chhomrong으로 하산하는 중간에 출렁다리를 건너자마자 다시 왔었던 2,662개 돌계단 오르막길을 넘고 또 넘어가는데 촘롱에서 다시 오전 11시30분에 일행들을 다 만나 되돌아가는 여정에도 마추피추레, 안나푸르나 남봉과 희운추리의 설봉들과 바라보는 전망이 다시 보아도 자연의 극치이다. 

언제 또다시 이렇게 반복해서 자연이 선사한 행운을 맞이할지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못할 것 같아 잠깐 일행들과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한 아버지 마부와 꼬마 아들 마부가 9마리의 말에 짐을 가득히 싣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말들이 전진을 거부한다. 하지만 두 마부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의 엉덩이에 사정없이 회초리를 내리친다. 마치 인간의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인 말과의 참혹한 비애를 바로 옆에서 보니 마음이 왠지 착잡해진다.

중식 후 이제는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더 빠른 하산을 재촉한다. 그런데 돌계단이 너무 가파른 하산길이다. 1시간30분 후 지누란다 롯지에 도착하여 온천이 가까이 있다고 지원자를 요청하지만 피곤해서 다 사양하여 롯지에서 대충 해결했다. 

저녁메뉴는 주방 쉐프 나달이 이 지역 신선한 자연을 먹고 자란 염소고기를 특식으로 준비하였는데 정말 맛이 일품이고 다들 많이 먹었다. 특히 우리 일행들을 감동시킨 것은 주방팀에서 준비한 케이크에 “안나푸르나 ABC 성공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문구다. 대원들 모두 감동한다. 그동안 여기까지 총지휘했던 전석훈 대장부터 한마디씩 덕담을 나누는 소회의 시간을 가졌다. 서로들에게 오늘까지 어려운 여정을 잘 극복한 것에 감사를 보내며, 내일과 모레까지의 남은 일정에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다짐한다. 내일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들었던 포터팀과 주방팀과도 헤어져야 하는데 10일 동안 너무 고마웠고 정겨웠다.

이들이 우리들을 대할 때마다 환한 미소와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워간다. 박미선 국장은 선뜻 자기가 아끼던 새것의 예쁜 등산복을 그 자리에서 벗어 여성주방팀 한명에게 입혀준다. 서로의 고생을 감동으로 나누었고 일행들은 박수를 보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재홍형은 자기가 아끼던 옷가지 대부분을 메인가이드 Lingee씨에게 줘 서로의 뜨거운 정을 나누었다고 하였다.

-10월24일(9일차)
Jinu 롯지에서 가이드 Mr.Lingee씨에 의하면 원래는 여기서 촘롱까지 직선로가 있었는데 트레커들이 촘롱에 들르지 않아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주기 때문에 데모를 하여 직선로를 폐지하고 촘롱마을로 다시 거쳐서 가는 것으로 하여 직선로를 없앴다고 한다.

아침 8시5분, 보통 때보다 좀 여유롭게 출발하는데 약 10분 후 Kadoorie 출렁다리(287m)에 도착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가장 긴 출렁다리인데 2년 전에 세워졌고 이 출렁다리 때문에 하산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고 한다.

거의 끝나 가는데 일행 중 김숙자 회원이 고소증과 감기몸살로 인하여 굉장히 힘들어 하는 모습이라 매우 안타깝다. 사실 여성대원들과는 개개인의 애로점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여기에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을 것이지만 그 인내의 아픔도 이제는 곧 끝나간다.

걷다보니 벌써 인구 3,000여명이 살고 있는 간드록마을을 지나 트레킹 여정의 끝 지점인 막큐마을에 안착한다. 대원들은 대기하고 있던 짚차에 나눠 타고 약간의 긴장을 푼다. 오전 11시20분에 다시 Nayapool에 도착하여 포터팀 6명, 주방팀 5명, 그리고 후미가이드 남겔씨와 12시30분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포카하라 공항으로 출발한다. 오후 3시40분에 포카하라 샹그리나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잠시나마 시내야경을 본 후 잠에 빠진다.

-10월25일(10일차)
아침 8시30분 공항에 가기 전에 호수 안에 힌두사원(바라히)이 있는 네팔의 가장 큰 페와호수에 들렀다. 나룻배 위에서 백설의 안나푸르나 여러 봉우리들을 감상하고 오전 9시10분에 카트만두행 프로펠러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해서 맡겼던 캐리어를 찾아 짐을 옮겨 넣고 중식 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시내 관광을 하였다. 외관은 좀 뒤떨어지지만 시민들의 표정에서 느끼는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나은 것 같다. 네팔에서의 마지막 중식은 안나푸르나 8,100m 고지를 점령하는 찰나에 천상의 별이 되었던 故 박영석 대장이 오랫동안 묵었던 곳에서 했다. 의미있는 식사를 마치고 메인 가이드 Mr. Lingee씨와 12일간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ABC베이스 캠프 4,130m의 찰라의 장면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정에서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 있다. 아마도 7명의 대원들도 다 똑 같은 마음일 것이다. 대자연의 극한점 도전은 사전에 준비하고 또 준비한 자에게 주어지지만 단순한 꿈과 열의 만으로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얻었다. 아무 사고 없이 대원들 모두가 안나푸르나를 넘어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 대원들의 무사안녕을 빌어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은 재경남해군향우산악회 최태수 회장님과 회원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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