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시20수를 쓴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은 조선중기 문신이며 서예가이다. 인조7년 숙종37년(1711)에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이고 의령宜寧인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시조로 유명하다. 이 영유시 20수를 서현 신갑남 서예작가의 필체로 만나본다.  

고을 사람들이 말하기를,“예전에는 고을의 아문衙門과 동헌東軒앞에 유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열매가 매우 많이 크게 맺혔고, 비록 한겨울이라도 천막을 쳐서 서리와 눈을 막아주면 한 해를 지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유자가 익은 지가 오래되면 그 맛이 다른 것보다 월등히 좋아서 매우 진귀하게 여길 만하였는데, 근래에는 그 옆에다 마구간을 지어 말똥이 뿌리를 부식시켜서 유자나무가 말라죽어 장차 다 없어지려 한다”하였다. 옛날 자첨은 만송정에서 후인들이 그 뜻을 계승하지 못함을 슬퍼하여‘덕을 좋아하여 내 모습 돕는 이 없다’라는 시구가 있었으니, 나 또한 서하고 쇠함에 감동하여 시를 읊어서 스스로 마음을 달래는 바이다. 
(제수용이양증지) 제거하기는 용이하니 기르기는 참으로 더디니
(탄식관원잔지피) 관청의 동산 땅바닥을 깎아낸 것 한탄스럽네
(단견연조등준골) 다만 연이은 마구간에 날뛰는 준마駿馬만 보일 뿐
(갱무장멱호향기) 다시는 천막 치고 향기로운 살 보호하는 이 없다오
(금인불급고인원) 지금 사람들은 크게 옛사람만 못하니
(전사수교후사사) 예전의 일을 누가 후인들에게 본받게 할꼬
(동각역증위마구) 동각 또한 일찍이 마구간이 되었으니
(종래물성유쇠시) 예로부터 물건이 성하면 쇠할 때가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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