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갑남 서예대가의 작품을 세상 밖으로 초청하다 (6)
신갑남 서예대가의 작품을 세상 밖으로 초청하다 (6)
  • 남해신문
  • 승인 2019.11.1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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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소개
영유시20수를 쓴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은 조선중기 문신이며 서예가이다. 인조7년 숙종37년(1711)에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이고 의령宜寧인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시조로 유명하다. 이 영유시 20수를 서현 신갑남 서예작가의 필체로 만나본다.

일찍이 들으니 숙부께서 진도珍島로 유배 가셨을 때에 유자 껍질을 잘게 썰어서 배와 전복과 합하여 김치를 담았는데, 풍미風味가 뛰어나서 연화(煙火)가운데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도 이것을 본받아 김치를 만들고는 젓가락을 멈추고 감회를 썼다.
(횡해경어조출지) 바다의 큰 고래 참으로 낚아 올리기 어려우니
(호아료사회방피) 아이 불러 아름다운 껍질 회를 만들라 하였네
(잉재세루상리육) 인하여 하얀 배 살을 가늘게 썰고
(차할경사석복기) 또 전복 살을 실처럼 썰었다오
(이객종시방가락) 두 손님이 따르는 때에 비로소 즐겁고
(삼인행처숙위사) 세 사람이 가는 곳에 누가 스승이 되랴
(증배아부문자법) 일찍이 숙부를 모시고 이 방법 들었으니
(거저환정탄구시) 젓가락을 들었다 다시 멈추고 오랫동안 한탄하네

이 지방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수십 년 전에는 마을의 집에 유자나무가 곳곳마다 숲을 이루어서 매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는 유자의 누런빛이 숲에 찬란하여 바라보면 구름비단과 같았는데, 근래에 마을 백성 중에 유자나무가 있는 집이 있으면 관청에서 장부를 만들어 등재하고는 가을철 유자가 익을 때에 아전을 보내어 나무마다 숫자를 세어 두었다가 거두어갔다. 백성들은 이미 아전에게 바치는 비용이 많고 또 관청에 바치는 수고로움이 있으며, 심지어는 혹 숫자를 세어 간 뒤에 바람으로 인해 떨어진 것이 있으면 그 주인이 다른 곳에서 사다가 더 보태어서 그 숫자를 채워야 했다. 그러므로 관리와 품관으로서 다소 세력이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하호下戶와 백성들은 모두 유자나무 뿌리에 불을 놓고 나무그루를 베어서 그 폐단을 없앴다. 이 때문에 유자나무를 심는 집이 예전에 비하여 십분의 칠팔할이 줄어들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서글퍼하였으니, 이는 바로 자미(子美)의 시에 ‘고을 백성들이 소중한 밀감을 중하게 여기지 않음은, 호리의 침해에 핍박받기 때문이라오’라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백성의 윗사람된 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으므로, 인하여 시를 지어 홀로 읊었다. 

(천노재득십년지) 천명의 종이 십년 걸려 가꾸었는데
(하사소근차작피) 무슨 일로 뿌리에 불 놓고 또 껍질에 도끼질하는가
(불독다강초읍원) 다강(茶綱)만 고을의 원망을 부르는 것 아니니
(종래귤세할민기) 예로부터 귤의 세금 백성들 살을 베어갔네
(최잔사우시도녀) 꺾이고 쇠잔함은 복숭아를 시기하는 여자 만난 듯하고
(황폐진성양극사) 황폐함은 참으로 가시나무를 기르는 원예사가 되었구나
(아청차언심측측) 나는 이 말을 들으매 마음이 몹시 서글퍼지니
(풍순물부재하시) 풍속이 순박하고 물건이 풍성함 어느 때에나 기대할꼬

 

서현 신갑남 작가소개
2011년 제20회 농업인서예대전 초대작가  
2013년 남도서예・문인화대전 초대작가  
2009년・2015년 개인전 외 단체전 다수 참여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서예대전에서 다수 수상
현)문화원 서예강사 m.010-8872-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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