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반기는 사람 많아 
우리 지역에는 행사도 많고 축제도 많다. 이런 날은 으레 언론사나 사진작가 방송국 또는 사진 찍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등장을 한다. 그렇게 등장을 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김용엽 시인이다. 만날 때마다, 언제나 소탈하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관심을 가져준다. 그래서 자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럴 때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를 향해 다가오는 팬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상하게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아 비결을 물었더니, “내가 우찌 아노”라는 짤막한 답이 돌아왔다. 필자는 그의 소탈하고 소박하고 가식 없는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음식이라도 같이 먹고 있으면 가게 주인들이 서비스를 몇 개 더 주면서 안부도 묻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인간관계를 유지하기에 가는 곳마다 모르는 사람 없고 반응이 좋으냐고 했더니, “모르겠네”라며 또 호탕한 웃음을 쏟아낸다. 어느 지역 사람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에 “몇 년 전에 지족에 귀촌하여 농사를 지으며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표리부동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안과 밖의 삶은 모두 일치한다. 10년째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개인기록물도 남겨주고 남해곳곳을 렌즈 속으로 끌어당기는 그를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가식 없는 그의 태도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카카오스토리에 ‘아침을 여는 책향시’올리고,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매일 동태를 다듬는 시인

사람들이 거의 잠든 시간인 새벽4시에 기상하는 그는, 한 시간 동안 시심을 끌어올려 시 한 편을 제일 먼저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른 아침을 5시 정도에 먹은 후, 아내가 운영하는 ‘바다양푼이동태탕’으로 가서 냉동실에 있던 동태 한 궤짝을 큰 통에 부려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적당한 상태가 되면 동태를 다듬기 시작한다. 이렇게 아내를 위한 2시간의 작업이 끝나고 나면 거주하는 집으로 돌아가 새벽에 써 놓은 시를 퇴고한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전혀 예민하지 않던 그가 시를 대면할 때는 아주 예민하고 정교한 사람으로 변신한다. 한 시어라도 더 고치기 위해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시에 대한 고민이 깊은 시인에게 
“선생님 요즘 걱정거리는 뭔가요?”
“원래 물질에 욕심이 없고 뭐든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기에 애 닳아하고 속을 태우는 일은 없는데, 둘째 애가 대학졸업 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해 그게 걱정이지, 그것도 잠깐 하다 또 잊어버리고 또 잠깐 생각하다 잊어버리기에 그렇게 많은 걱정을 쏟지는 않지, 그 외는 없네”
역시 낙천적이고 낭만을 품고 사는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걱정에서 빨리 벗어나기에 영혼이 맑은 시를 건져 올리고 카스토리에 ‘아침을 여는 책향시’를 809번째나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생산한 대부분의 시는 그만의 향기와 불심이 묻어있어 독자들은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고 있다.

퇴행성관절염 앓고 있는 손가락 때문에 음료수 뚜껑도 잘 따지 못해
아침마다 생계를 위해 동태를 다듬는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많은 오해를 받는다. 아내는 가게에서 하루 종일 장사를 하는데 남편인 그는 카메라 메고 사진이나 찍으러 다닌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아침에 동태를 다듬어 아내의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핀잔을 준다. 하지만 그는 5년 동안 동태를 다듬는다고 이제는 손가락관절이 다 망가졌다. 손이 힘 있게 생겼지만 사실은 병뚜껑도 남들처럼 시원스럽게 따지 못해 몇 번이나 힘을 주며 겨우 성공을 시킨다. 매일 동태를 다듬느라 손마디에 반복적으로 생긴 상처와 생선 가시에 찔린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이 된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은 그는 관절염이 더 심해져도 그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남편의 마음을 잘 아는 아내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를 메고 자신의 일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자생활 후 병원 근무, 늘 약자 편에서 정의로운 삶 추구
대구에서 태어나 동국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산사로 출가할 뻔하다 늦은 나이인 36세에 남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2000년부터 남해에 정착하여 이제 19년째가 되었다. 남해정서를 잘 이해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는, 법망에 걸려 어떻게 할 줄 몰라 하는 선의의 피해자들을 구제해주기도 하고,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졸업 후 중앙에서 기자생활을 몇 년 하다, 450개 병동이 있는 큰 병원에서 16년 근무를 한 후, 원무과장으로 퇴직을 했다. 그가 즐겨 읽었던 능엄경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지지 마라’고 돼 있다. 그는 그 말씀을 붙잡고 지금껏 살아왔기에 사실 생활이 풍족하지 못하다. 하지만 불편할 뿐 불만은 없 다. 그가 가난을 받아들이고 사는 이유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어느 날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퇴직금을 빌려주고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서 그것을 받아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그의 철학이 밑받침되었다고 보면 된다. 정의감으로 불타던 캠퍼스시절 교수가 일본유학을 권했을 때는 “공부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승복을 입지 않겠다”는 당돌한 답을 하고 일본으로 가지 않았다. 필자는 그의 개인사를 듣는 순간 계속 이분법에 눌려 그때 ‘승복을 입었다면? 퇴직금을 빌려주지 않았다면?’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동안 출간한 서적, 세 번째로 준비하는 시집

1999년에 첫시집 ‘정신병원풍경’ 출간 후, 2002년 ‘쪽빛바다의 섬 남해도’라는 관광안내책자를 출간, 2013년 ‘일본유배 이야기’ 학술논문을, 2015년에는 시집 ‘여정의 흔적Ⅰ’를 출간했고,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에는 ‘여정의 흔적Ⅱ’를 출간할 예정이다. ‘아침을 여는 책향시’에 이미 올린 시와 세상에 아직 드러내지 않은 미발표작도 함께 실리게 된다. 이번 시집에는 에피소드나 일상생활을 통해 건져 올린 체험 시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은 것에서 건져 올린 소소한 기쁨들이 그의 독특한 시어로 다시 태어날 시집이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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