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진리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날마다 만나는 우주의 작용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오후에 해가 지는 일이나 달과 별의 작용으로 사시(四時)가 바뀌는 일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우주의 섭리는 우리가 늘 만나는 일이기에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늘 반복되는 경험일지라도 스스로가 깨어있지 못하다면(현재에 존재하면서 사랑하기와 감사해하기) 어떠한 감화라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계기가 되어 내가 존재하게 되는 이유를 좀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여유를 지닐 수 있다면 표면적으로 인식하는 현상 이상으로 의식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어느 순간이든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주의 작용이었거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이든지 간에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신묘한 경험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지만, 우주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을 갖가지 상관관계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주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 이상의 영적 에너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에너지와 입자의 상관관계, 믿음이 동반된 사랑의 힘, 처음도 끝도 없는 동시다발적 연계성, 대상과 대상은 둘이 아니요(不二) 하나라는 초 이심전심의 교류입니다. 이는 영적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입니다.  
비록 작은 일일지언 한 사람이 길을 묻고 가르쳐주는 행위가 사소한 듯해도 거기에는 전체 우주의 사랑이 선행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이 우연히 나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요, 햇살이 비취면 그 햇살이 그냥 비친 것이 아니라 일체가 사랑으로 연결된 작용이라는 점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뿌듯한 감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 지각은 감정이나 생각의 사슬에 묶여 한 치 앞이라도 내다 볼 여력조차도 없는 것이고 보면 이를 뛰어넘을 자세를 갖춘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삶의 목표치를 대체로 먼 곳, 긴 시간에 목적을 둔 미래의 개념이기에 사랑을 예측하거나 남기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이라는 속성에서 느낄 지각이 덩어리와 무게(욕망과 욕심)라는 점에 익숙한 정서로서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감정(물질 덩어리)으로서 인지될 우리의 사고가 오랫동안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진화의 차원에서 이제는 그러한 인식을 뛰어넘어 더 넓은 세계로 다가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현재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현재에서의 사랑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 들 행복의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의 정성 어린 기도가 기적을 낳거나 자식을 살리는 예를 종종 보곤 합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의 힘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상호작용으로 영향을 주거나 미치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언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정도라면 사랑의 순수 에너지 입자가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진화다운 진화는 오직 ‘현재에 충실히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형성하는 것은 에너지요 입자라는 점에서 사심이든 진심이든 하나의 선택적 작용이 생명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납니다.
만약 내심의 에너지 작용을 그릇되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가 하는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와 지구 전체에 피해를 주고 상처 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대상과 내가 완벽히 하나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체 작용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관점에서 사랑의 힘이야말로 모든 생명을 살릴 보약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은 나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온전히 받아들여 나의 사랑으로 연결된 행동 하나가 우주 전체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는 또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자아 탐구와 명상과 수련을 통하여 사랑의 힘을 배가시키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선행적 경험을 수용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라야 만물을 사랑할 수 있으며 자신을 최고로 사랑해야 뭇 생명도 최고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