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동안 여름이면 한해도 빠짐없이 중국 단동을 드나들며 수없이 압록강 철교를 오르내리며 끊어진 철교 끝에서 북한의 신의주를 통해 이 철교를 건너 단동을 거쳐간 항일사를 써보고자 한다.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는 1909년 5월 일본통감부 철도국이 착공하여 한일 강제병합 후인 1911년 11월에 준공했다. 

철교의 중앙에는 단선 철교가 부설되어 있고 그 양쪽에 인도가 설치된 현대식 교량으로 총 길이는 944m이다. 압록강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통행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회전식 교량을 설치하여 큰 배가 오갈 때마다 중앙 교량이 90도 회전, 선박의 통행을 가능케 했다.

압록강 철교는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진출을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폭격기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한반도와 중국 동부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이 철교를 세울 때 수많은 인명과 자원의 착취가 행해졌다.

압록강 철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 러시아 등으로 망명했던 독립투사들이 일경의 감시를 피해 가슴을 졸이며 건너 오고간 한 맺힌 회한의 다리였으며 포승줄에 묶인 채 감옥으로 끌려갔던 통한의 다리였다. 끊어진 다리가 관광지가 되어 연일 관광객이 붐비고 있으니 희비가 엇갈려 가슴 아픈 일이다. 일제치하 35년 단동에 얽힌 항일운동사 이륜양행을 소개한다. 단동은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다. 
상해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안창호, 이상룡, 이희영 등 헤아릴 수 없는 항일투사들이 압록강 철교를 통해 단동으로 잠입했다가 상해, 만주, 러시아 등지로 망명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본래 지명은 安東이었는데 1965년 중국 국가 주석 모택동이 방문하여 동으로 뻗는 곳이라 하여 丹東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평양과의 거리는 불과 220km, 서울과의 거리도 420km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거리보다 가깝다. 임진강변에는 철조망이 있고 경비군이 있으나 여기 압록강 변경도시 단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단동 항일운동의 본거지는 이륜양행 이다. 아일랜드 영국계 죠지.엘.쇼우(George.L.Show)가 운영하는 무역회사로 한국인 독립투쟁을 은밀히, 때론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곳이다. 쇼우는 일제의 감시와 방해공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해 여러 항일투쟁단체간의 정보제공,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쇼우가 항일투쟁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일본 영사관의 일경에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도 이륜양행 직원을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영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석방된 후에도 단동지역 한인들과 함께 일제식민지 정책을 규탄하는 대회를 열기도 했다.
김구 선생 일행이 이륜양행에 은신했다가 상해로 떠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경이 떠나는 이륜양행 선박을 추격하여 공해까지 뒤쫓아 총격을 가하며 따랐으나, 방어총격을 가해 무사히 상해에 도착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당시 이륜양행 건물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나 원형 그대로 단동시 흥륜가에 보존되고 있다.
친일반역행위를 일삼던 일경앞잡이들이 피를 나눈 동족을 밀고하고 착취하던 암흑시대에 인종과 나라를 초월하여 우리의 독립투쟁을 지원했던 George.L,Show의 위대한 삶에 무한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신을 기리고자 2018년(73주년), 2019년(74주년)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를 재중 단동거주 한인들과 성대히 가졌다. 다음은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열 번째 등정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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