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당선작 중편소설(7) 선도화(仙島花)
신인 당선작 중편소설(7) 선도화(仙島花)
  • 남해신문
  • 승인 2019.09.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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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남해문화원 사무국장·소설가)
김미숙(남해문화원 사무국장·소설가)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부모님과 처자식을 생각하면 자암은 죄인이었다. 천리길 유배지에 있는 못난 자식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불충보다 자신의 불효가 더 큰 죄로 가슴을 옥죄었다. 남해섬으로 유배 간 지아비의 겨울이 추울까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옷을 지어 보낸 부인의 정성에 그는 목이 메인다. 자암은 가족들의 상심을 알기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알마저도 죄스러웠다. 주막에서 마시는 탁주 한 사발도 불효며 호사스러운 사치였다. 자암의 식솔들은 한양보다는 남해섬 유배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충남 예산으로 낙향했다. 

‘나는 평생을 덕을 쌓고 바른 것을 귀히 여기며 살아왔는데, 왜 부모님께 근심을 안겨주는 술주정뱅이 유배객이 되어 살아가는지 모르겠구나. 나로 인해 부모님의 근심이 클 것인데 어찌 기녀를 옆에 끼고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라며 깊은 한숨과 함께 자암은 혼자 중얼거렸다. 

희철은 자암의 마음을 알지만 외로운 이곳에서 강금이와 자암이 좋은 벗이 되길 바라며, 자암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자암, 강금이는 천출은 아니오. 연산군 때 역모 죄로 억울하게 유배 온 유배객의 여식이지요. 애비는 남해로 유배오다 객사하고 에미는 남해에서 강금이를 키우다 풍토병에 걸려 일찍 죽었지요.  강금이를 거둬 키울 사람이 없어 노량 기방 행수 두향이가 거두었는데, 그 아이의 인생도 참으로 기구하오. 강금이는 다른 기녀와 달리 양반 출신 기녀라 기품이 있고 마음결은 곱지만 마음과 깊이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오. 이런 강금이의 기예와 미색을 진주목사도 찬사하고 귀히 여기니 누가 함부로 하겠습니까.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별시와 박교수, 이충걸과 어울려 노량 기방에 가 보실 생각은 없으시오?”
자암은 기방에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자암은 정희철과 벗들의 권유를 몇 번이나 거절하고 난색을 표했지만 그들은 떼쓰는 아이처럼 자암을 귀찮게 했다. 자암은 그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노량기방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함께하니, 박교수와 하별시는 신난 아이처럼 자암을 밀며 끌며 노량기방으로 향했다. 저 멀리에서 도포자락을 날리며 오는 정희철 일행을 먼발치에서부터 바라보던 노량기방 행수 두향은 버선발로 나와 반겼다. 두향은 음식이 잘 차려진 방으로 정희철 일행을 안내했다. 희철은 자암이 가장자리에 앉도록 권했지만 그는 구석진 자리를 자처하며 편하지 않은 마음을 대신했다. 잠시 후, 녹파주, 소곡주, 유자주가 차례로 들어왔고 유자향의 상큼함이 술 향과 어우러져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관음포 갯벌에서 잡은 커다란 백문어와 잘 익은 황금빛 닭은 먹음직스러웠다. 무엇보다 독특한 남해 특유의 술향은 자암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희철 일행이 머무는 기방은 어느 덧 장구를 치는 기생과 소리를 하는 기생의 흥겨운 장단에 흥이 한껏 올라있었으며, 하별시와 박교수는 기녀들과 함께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돋구고 있었다. 자암은 모든 것이 불편한 듯 의미없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무료한 듯 유자주로 목을 축였다. 흥이 절정에 오르고 장단이 끝날 무렵 장구를 치던 기생은 하별시 옆에 앉고, 소리를 하던 기생은 박교수 옆에 앉았다. 잠시 후 거문고 소리와 함께 예사롭지 않는 여인의 고운 뒤태에 시선이 모아졌다. 희철은 기다렸던 벗을 반기듯 환한 얼굴로 자암을 바라보았다. 자암은 고운 뒤태의 여인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서서히 돌아서는 여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분명히 지금 자암 앞에 있는 저 여인은 남해읍성 대로변에서 소피를 보고 있는 자신에게 독설을 퍼붓고 지나간 그 여인이 분명했다. 자암은 현실이 아니길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지만 그때 그 여인이다. 그는 헛기침으로 애써 외면했다. 그 날을 생각하니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그의 당당하고 넓은 어깨를 자꾸만 작게 만들었다. 자암은 행여 저 여인이 자신을 알아볼까 애꿎게 술잔에 코를 빠뜨린 채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자암의 이런 모습을 벗들은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금이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노래와 춤을 베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암의 옆에 살포시 앉았다.
“노량 기방 강금이라고 하옵니다. 선생의 명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소녀가 감히 술을 한잔 올려도 되겠는지요?”
자암을 처음보는 듯한 기녀의 말투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으며, 이 기녀가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녀가 권하는 잔을 받았다. 자암은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붉어졌다. 그는 소곡주를 따르는 강금이의 모습을 무심한 척 바라보았다. 그녀는 복사꽃처럼 화사하고 어여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우유빛 피부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반짝이는 눈동자, 짙고 긴 속눈썹, 붉은 입술 사이로 보이는 가지런하고 고른 치아와 환하게 웃는 미소는 목석같은 자암의 심장을 내려 앉히는 듯했다. 저렇게 매혹적이고 고운 여인이 모진 풍파로 칼바람을 맞고 해어화가되어 자암 앞에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정희철은 수 년간 강금이를 보아왔다. 강금이의 행동이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자암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그녀의 손끝이 떨리고 있음을 희철은 지켜보고 있었다. 자암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희철은 그녀를 예인으로서 아끼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금이의 떨리는 마음을 자신이 오롯히 느끼는 것에 아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희철은 이유 없이 목이 탔다. 그는 애써 침착하려하지만 자꾸만 두 사람에게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희철은 질투에 눈 먼 속 좁은 사내처럼 보일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희철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잔을 비었다. 강금이의 눈을 바라보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만 바라 볼 뿐이다. 희철은 강금이의 생소한 모습을 바라보며 마치 다른 여인을 보고 있는 듯했다. 희철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강금이를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자암과 함께 노량기방을 찾은 것을 후회하고 있는 자신이 못나보였다.  
자암은 가슴이 답답해왔다. 자신은 유배지에서 기방의 손님이 되어 흥청거리고, 어엿한 사대부집 여인으로 고고한 삶을 살아야 할 여인은 관기가 되어 웃음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이생에 아픈 한을 가슴에 품은 해어화가 되어버린 강금이를 바라보니 자신의 가슴에 돌을 얹어 놓는 듯 명치끝이 아려왔다. 자암은 갑자기 밀려오는 답답한 맘이 싫어 바깥공기를 쐬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술기운이 있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려다 옆에 앉아있는 강금이의 몸과 부딪치고 말았다.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 자암을 바라보던 강금이는 자암이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게 살포시 손을 잡아주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자암은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노량포구로 향했다. 노량포구를 향하는 자암의 발걸음은 허둥거렸으며,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은 그녀가 자신의 손을 잡는 순간에 멈춰있었다. 고장 난 기억처럼  강금이라는 기생의 손과 그녀의 향기가 자암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고 있었다.       
연이는 두향이가 버선발로 반기는 희철의 일행 속에 어색하게 서 있는 자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남해읍성에서 아주 오래된 추억 속의 대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암은 연이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던 총명한 대유의 모습이 아니었다. 폐인이나 다름없는 주정뱅이 유배객의 모습으로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대장부 자암이 날개가 찢기고 손발이 묶여 하늘을 원망하며 절규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며 행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볼까 숨 죽여 눈물을 삼켜야 했다. 연이의 아름다웠던 추억 속 자암과 천리 길 유배지 남해 섬에서 지랄 맞은 운명으로 만난 것이 서럽고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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