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석 떡나라 폐백나라 대표
문봉석 떡나라 폐백나라 대표
  • 박서정 기자
  • 승인 2019.09.06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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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판에 새긴 ‘그러려니하고살자’ 그의 삶이 있게 한 원동력
20년 동안 떡집운영 수상한 상 다 기억 못하는 명인… 이젠 서각으로 받는 상 늘어 5년 후 개인 전시회 가질 예정

농협을 다니다 퇴직하고 ‘떡나라 폐백나라’를 시작한 지 20년 여전히 생체리듬은 부정확하다. 떡 주문이 많으면 새벽2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날을 새우기도 하니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이 항상 불일치한 것이다. 예전에는 떡 주문이 너무 많아 필요한 시간에 못 만들어서 못 나갔지만 요즘은 인구도 줄어들고 주문량도 그만큼 줄어들어 다 맞추고 있다. 2년 전부터는 부부가 운영하는 떡집에 아들도 동참을 하여 시간적 여유가 생긴 문 대표는 자나 깨나 잊을 수 없었던 떡사랑에서 조금 비켜나 3년 전부터는 서각사랑으로 전환, 망치와 끌을 잡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20년 동안 떡지기를 하면서 국내외경연대회에 수없이 참가하여, 금상‧장려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힘이 들어 경연대회 나가는 것은 자제하고 서각에 몰두하고 있다. 서각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완성했던 동락(同樂)을 출품하여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지난달 18일 제35회 대한민국가훈미술대전 서각부에서는 특선을 했다. 무엇이든 허투루 넘기지 않고 세심히 살피는 그의 예술적 성향으로 인해 오랫동안 떡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고, 지금은 서각이 그의 손에서 재미지게 피어오르고 있다. 떡 공장 옆 1층 작업실에서 만들어진 서각작품은 2층 그의 갤러리로 옮겨져 벌써 40여 점이 되었다. 앞으로 5년 후 80여 점이 되는 날 전시회를 열 생각이라는 그의 표정은 아주 편안하고 보람차보였다. 그 옛날 썼던 떡판에는 모든 삶을 달관한 듯한 여덟 글자 “그러려니하고살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지금 그의 삶처럼.                      -편집자 주 

■ 벌써 추석 떡 주문이 많은 것 같은데
아니다. 주문량에 상관없이 미리 송편을 만들어놓는 중이다. 예전에는 주문한 떡을 모두 다 만들지 못해 미안했는데 요즘은 주문한 떡은 모두 다 만든다. 주문한 종류와 양에 따라 떡을 미리 만들어야 하기에 명절 같은 날을 앞두고는 밤을 새기도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거의 시루떡을 했는데, 요즘은 시루떡보다 송편이 더 많다. 송편에는 깨‧땅콩‧꿀을 넣어 만들고 있다. 

■ 20년 동안 떡 만드는 일을 하셨다. 어떤 과정을 거쳤고 떡과 관련된 일들이 있다면
농협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후 45세부터 떡집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아내가 먼저 떡집을 하고 있었기에 경력은 더 많은 편이다. 떡집을 시작하면서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떡 한과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응용한 떡들을 개발하다보니 추천을 받아 떡 경연대회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나갔다하면 수상을 하였다.
2008년 향토식품경연대회 전통떡 명인경연대회에서 ‘흑마늘떡케익’으로 금상 수상, 제2회 떡의 세계화를 위한 작품발표회 은상 수상, 2007년 경남요리경연대회 전통 떡 체험관내 우수업소 Feel! 경남사랑, 제3회 떡의 세계화를 위한 작품발표회 금상, 서울 떡월드페스티벌과 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 금상, 제1회 2008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 떡류부분에서 금상 수상, 2011년 경남향토식품경연대회 전통 떡 개인전에서 금상 수상, 새로운 떡 개발과 봉사활동을 높이 사 경남 떡 업계를 대표해 경남도지사 표창장도 받았다. 떡의 세계화를 위한 작품발표회 겸 학술 심포지엄(떡월드페스티벌)과 2009웰빙식품개발 경연대회, 미국뉴욕한식요리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바도 있다. 
이외에도 전국대회와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상장들이 20여 가지가 넘는다. 상의 종류를 일일이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상을 받을 때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신문에 축하광고를 내 주기도 했다. 우리 고장에서 나는 재료로 떡에 활용하다보니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다닐 때 회장을 맡게 되어 공로상을 수상했고 총장상도 받았다. 다른 곳에서 떡집을 하다 지금 이곳으로 옮겨와 떡나라 폐백나라를 개업하던 날, 계원들이 떡메치기도 하였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10년 전에는 방송에도 나가 우리 집을 홍보하였다. 지금은 해가 갈수록 몸도 힘들어 경연대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 

■ 만들고 있는 떡과 앞으로 또 개발하고 싶은 떡이 있다면 
읍에는 떡집이 7군데 있고 남해군에는 모두 23군데가 있다. 떡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못 만든다. 우리 집에서는 폐백떡 이바지음식 결혼피로연 개업 고사떡 시루떡 백일떡 돌떡 잔치떡 각종 떡을 만들고 있다. 떡의 재료와 활용소재가 주변에 무한하여 자유롭게 응용하여 만들고 있다. 
특히 남해의 명물인 유자 잎을 이용한 유자떡은 대표적인 떡으로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쑥인절미‧단호박백설기‧팥찰시루떡‧영양떡‧모듬떡도 맛과 영양이 뛰어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추석과 상관없이 접대용으로 잘 나가는 떡은 낱개 포장한 영양떡이다. 앞으로는 개당 1500원 정도하는 앙꼬모치를 새로 만들어보고 싶다. 

■ 힘을 쓰는 일을 20년 하다보면 직업병이 생길 것도 같은데 혹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60부터 청춘이라는 말이 있지만 올해 62세인 나는 자꾸 힘이 없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기계로 할 수 없는 것에 힘을 쓰다 보니 속병이 든 것 같다. 팔과 어깨가 아파 파스를 자주 바른다. 기계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져 수월한 것도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힘을 많이 쓰게 된다. 허리도 불편할 때가 있지만 이 떡집을 통해 노후대책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서각도 여유롭게 배울 수 있어 지금 행복하다. 

■ 떡사랑에서 서각사랑으로 바뀐 것 같은데
맞다. 이제는 떡 만드는 것보다 서각을 하는 시간이 좋다. 내가 서각을 배워 제일 처음 새긴 것이 ‘同樂’, ‘다른 사람과 함께 즐겁게 살자’는 것인데 우연찮게도 이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 첫 작품이 상을 받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서각을 할 때 원본에 없는 것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서각을 할 때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는 대형작품 위주로 하여 5년 후에는 전시회도 열고 싶다. 남해읍행정복지센터 내 남해갤러리에서 지금 있는 작품만 가지고도 전시를 하자고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2017년 12월에는 경남도립남해대학 평생교육원장으로부터 서각과장으로 표창장을 받기도 했고, 2018년 5월 24일에는 ‘매일생한불매향’이라는 작품으로 제9회 전국공모3‧15미술대전에서도 입선을 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18일 제35회 대한민국가훈미술대전 서각부에서는 특선을 했다. 
나는 서각을 할 때가 무척 행복하고 기쁘다. 떡을 만들면 남이 가져가 없어져버리지만 서각작품은 만들어 놓으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내 곁에 남아있기에 행복하다. 서각은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희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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