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에 있는 부부나무 사이로 내려다본 앵강만
▶ 매일 연습하고 있는 붓글씨
▶ 매일 연습하고 있는 붓글씨

남해문화원 신갑남 서예반 선생으로부터 5년째 수업을 받고 있는 김용철 대표는 지난 5일 제28회 전국농민서예대전에 입선을 하여 3주 전 본지에 이 소식을 한 번 전했었다. 70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 받았던 그 상은 김 대표에게 너무나 자랑스러운 열매였기에 그의 표정에서는 그 여운이 계속 묻어 있었다. 언젠가 어느 행사장에서 김용철 대표에 대해 거론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 관계자가 남해경제를 발전시키는 일환에 대해 참석자들로부터 의견을 수집하던 중 “우리 남해에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퇴직을 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남해에 정착해 사는 훌륭한 분들이 많으니 그 분들의 아이디어를 십분 발휘하게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남면 홍현에는 대기업에서 마케팅의 귀재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김용철 선생이 계신다. 그분의 노하우나 능력을 우리 남해군이 적절하게 활용하면 농수산물 등의 판매와 유통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이번에 이것저것을 겸하는 기회가 되어 그 뜻이 이루어졌다. 앵강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 좋은 그의 자택에서 모처럼 여유와 낭만을 누리며 귀한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주 

▪ ‘아루나찰라’ 정말 생소한 말인데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아루나는 빛이고 찰라는 산이기에 직역하면 빛의 산 여명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주의 문 지구의 심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성인 라마나 마하르쉬가 어릴 적부터 아루나찰라라는 울림을 듣곤 했는데 그런 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17세 때 그곳에 들어가 머물렀던 성산으로 남인도에 있는 817m의 산 이름이다. 나는 가톨릭신자이지만 이곳이 명상의 터 나만의 조용한 쉼터가 되기를 바라며 그 이름을 지었다. 이곳은 여전히 위안의 쉼터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나를 편안히 받아주는 안식처가 되고 있다. 

▪지인의 권유로 민박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하시는지

남해에 온 지는 11년 되었다. 한 5년은 인천에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에 잠깐 다녀가곤 했다. 6년 전 사업체를 완전 접고는 이곳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만의 쉼터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나보다 연배가 높은 지인이 혼자 살면 외롭고 적적하니 민박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여, 여수 엑스포가 열리던 2012년부터 민박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숙박할 곳이 부족하여 우리 집이 많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쉼터로 사용하기 위해 민박을 접었다. 이곳에 머물렀던 손님들의 소개로 요즘도 숙박문의가 계속 오지만 다른 곳으로 소개를 해 드린다. 6년 동안 많은 손님과 한 공간을 사용하면서 삶의 교훈을 많이 얻었다. 금수저로 태어나 까칠했던 내가 지금 밝은 얼굴 웃는 얼굴로 바뀐 것은 6년 동안의 민박을 통한 변화이다. ‘저런 손님처럼은 하지 않아야지’하는 반성을 통해 새로운 자아형성이 되었고, 남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유해졌다. 이제는 아루나찰라가 나만의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유기동물인 고양이들과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남해로 오시기 전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31세쯤 (주)미원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상(주)로 회사명이 바꼈다.
회사에서는 회계 쪽을 봐 주기를 원했지만 나는 남들이 알아주는 그 일을 거절하고 영업부서에서 장돌뱅이 일을 하겠다고 자청하고 영업부서 판매기획과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다. 기획업무 영업업무를 하면서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걸 인식하고 완전 영업파트로 뛰어들어 현장을 누볐다. 
전국을 다니며 영업을 하는 나를 측은히 여긴 사람들은 “많이 배운 사람들이 하찮은 영업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둘 것”이라는 걱정과 우려 섞인 말을 수시로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야구를, 학창시절에는 또 다른 운동을, 대학교에서 3년 동안 럭비 선수로 활동하며 승부근성을 길러서인지 남들이 험하다는 그 가시밭길을 투철한 사명감으로 잘 걸었다. 무엇이든 한 번 하면 골지게 파고 드는 성향으로 인해 결국 외국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고, 남들이 꺼리는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8년 동안 식품과 관계되는 마케팅을 성실히 수행했다. 
회사에서는 나의 열정과 능력을 인정했는지 젊은 나이에 대상(주),(대표브랜드 청정원 종가집)대표이사 사장을 맡겨 25년 동안 근무하게 했다. 그 당시 일반사원이 대표이사 사장을 맡은 것은 유일무이하여 세상에 자주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모든 역량을 회사에 쏟은 탓인지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한창 일할 나이여서 퇴직 후에도 사업체를 경영하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K-Food 기업지원단)에서 자문위원(마케팅, 경영)으로도 활동을 했다. 

▪여기가 좋아서 왔을 텐데 이곳 문화와 충돌되거나 불편했던 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사실 회사를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많은 일을 해서인지 뒤늦게 당뇨가 있다는 것을 알고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요양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는데 마침 여기 남해의 시골적인 풍경과 아기자기한 섬들이 모두 한가롭고 아늑하게 보여 마음에 들었다. 한 달 동안 살 집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이 집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 마을 어르신을 만나 인사를 하면 삐친 것처럼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묵묵부답이어서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지내고 싶어 2년 동안 설과 추석이면 선물세트를 전하기도 하고 발전기금을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벽은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말을 트고 인사를 주고받기까지는 무려 4~5년이나 걸렸다.  요즘은 운동하고 오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면서 “서울양반 왔네! 어제 불이 켜져 있대…”라는 말로 관심을 표하며 먼저 말을 걸어온다. 이제는 마을사람들과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남해의 특산물을 이용한 마케팅이나 컨설팅을 해 본 경험이 있는지, 앞으로 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젠가 남해마늘연구소를 방문하여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고 내가 도울 일이 뭔지를 알아본 적은 있다. 그리고 설천면장님에게 전화해서 유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되거나 실행된 것은 없다.
인도네시아에는 붉은 색의 마늘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 적양파와 접목시켜 새로운 농작물로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해 본 적도 있다. 내가 청정원에 재직 중일 때 홍초라는 제품을 제안하고 주도를 하여 생산을 하게 되었는데 단일품목으로 엄청난 소득을 올렸다. 남해에는 대학나무로 불린 유자나무가 있다. 왜 유자로 소득을 올리는 일이 주춤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부활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인근 고흥 유자처럼 우리 남해도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생산하여 제품화하면 농가소득에 신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산지에서 재배되는 양을 조사하고 필요조건을 갖춘 다음 가공공장을 설립하여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유자청을 만들어 팔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남해는 유자를 껍질만 이용하여 청을 담지만 고흥은 속과 껍질을 모두 사용하여 담는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두 가지가 혼합된 청을 좋아한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설비투자금만 들이면 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생산보다 판로확보개척이다. 유자제품 판매확대는 타 제품에 비해 다소 용이한 품목이라 생각된다. 

▪ 현재 하는 일이나 취미생활 등을 말씀해주신다면 

가톨릭신자이니 남해성당에 나가고 있고 소통위원회 환경청년분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취미활동으로는 ‘아름다운 독서모임’, ‘시창작교실’, ‘수필창작교실’ 등에서 공부를 했고 남해문화원에서 현재 서예‧문인화‧민화를 배우고 있고 색소폰은 다시 배우기 위해 신청을 해 놓았다. 70이 되면 그때 독주회와 지금 배우고 있는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고 싶다. 
그리고 올해나 내년쯤에는 시집을 출판하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붓글씨를 연습하고 시도 즉흥적으로 쓰고 있다. 남해에서 제일 좋다는 홍현에서 이런 즐거움을 누리는 요즘이 인생의 또 다른 황금기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의 습작 시 중 남해의 특산물인 ‘유자’를 여기에 옮겨 본다.) 

유자

함께 있어도/푸른 잎새에/가리어/꽃이 피었는지/몰랐답니다//함께 있어도/열매가 맺혀/자라고/있었는지/몰랐답니다//함께/있어도/노란 빛을 보고서야/유자가/열렸다는 걸/알았답니다//함께 있어도/숨겨진 유자를/하나둘/따면서야/풍년임을/알았답니다//함께 있으면/모든 걸 /잘/알 것 같았건만//이제 보니/난/바보처럼/모르는 게/많았답니다/함께 있어도/가까이 있어도//
(*2017년 11월11일 빼빼로데이 날 현관 앞 유자나무 열매를 따고 난 후 쓴 시)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