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만약 누군가가 ‘나는 누구인가?’ 라고 질의해 온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통상 나라고 하면 몸을 이루는 신체 각각을 먼저 생각할 것이고 이어 마음으로 느낄 즐거움이나 기쁨에서 상기될 갖가지 감정을 떠 올리기도 할 것입니다. 
몸의 구성에서 보면 머리도 나요(내 머리), 얼굴(내 눈, 내 코, 내 입, 내 귀, 내 혀)도 나이며 손과 발 등도 내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성격적으로도 모난 성격이 나요(내 성격이 까탈스럽다), 화내는 것도 나(나 화났다)이며 웃음 짓는 것도 내(내가 웃는다)가 되므로 나는 순간마다 변화하는 감정이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의 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 감정, 감성 등 모든 내적 사고 작용 모두가 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나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는 셈입니다. 여기에다 내가 소유하며 기억될 각종 물형(내 집, 나의 자동차)이나 소유하고 있는 물건 등도 이에 해당할 것이고 특히 상념으로 기억될 갖가지 추억도 나로 연결되기에 나의 존재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하루에도 수십 번의 내가 존재하므로 어떤 때는 나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수많은 ‘나’ 중에서 어느 것을 진짜의 나로 정하여야 하는 가 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갖가지 사념(思念)이나 감정 등이 진짜의 내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으며 또 어떻게 찾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과연 진짜의 나를 만날 수 있겠냐는 문제에 직면할 때 내가 나임을 자각하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마다 나를 일치 시켜 보는 것입니다.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서 지금 순간의 경험에 생각을 일치시키면서 내 생애 최초이자 처음이라는 현실 감각을 일으켜 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표층 의식으로 인지될 감정 영역 너머에 있을 한층 조용하고 감미로운 심층 의식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심층 의식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이하게 될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순간입니다. 

이때가 되면 자연이나 우주의 기맥이 한 거울 속에서 비추어지듯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실상은 고요한 자리이면서 만사를 이룰 씨앗처럼 넉넉한 순수 입자(순수 영혼)가 바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용하면서 만물 만상에 관여하지 않음이 없는 이것을 이름 하여 나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소중한 나의 참모습이라도 어떤 흔적이나 모양도 없고 나타나는 자취도 없으니 나를 정의 내리거나 규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상기되는 말이 내가 있으면 저쪽이 있고 내가 없으면 저쪽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모양도 자취도 없지만 있는 것이 분명한 순수 입자)가 있어야 내(몸)가 살아있는 것이며 저쪽(삶의 실재)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통찰 없이 관념(습성)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형국으로서는 나의 실재를 볼 수도 없음은 물론 느낄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즉 실재가 없으면 실존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해석과 분석 논리로서의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가치(순수 본연의 씨앗)에 품격을 둔 나를 만날 때 그때서야 정말 나를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인도의 명상가 라즈니쉬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대는 실재하는 그 사람의 참된 존재를 만나느냐? 아니면 그에게 되비친 그대 자신의 모습을 만날 따름이냐? 그대는 어느 누구라도 진실로 만난 적이 있느냐? 아니면 그대 자신의 되비침, 그대 자신의 해석이었느냐”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존재로서의 내가 차지하는 외형적 비중만큼이나 안으로 나의 실제를 바라보는 능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보면 궁극적으로 내가 정말 나를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내 속에서 일체 생명의 진실과 순수를 얼마만큼 잘 알아차리느냐에 딸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행동 양식이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끝나는 귀결점에서 섭렵될 나의 실재가 더욱 빛이 나도록 노력(명상, 수련)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