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3회 숙이나래 문화제’를 기획하면서 실외 공연 위주의 형태를 취한 지난 2년의 방식을 조금 벗어나 남해 군민을 대상으로 독립예술영화 <주전장>을 상영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원 사업비 대부분을 대관료로 지불했지만, 일본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에 반발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짙은 안개처럼 모든 양상이 모호한 이 시점에, 8.14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앞두고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주된 전장(戰場)이라는 뜻을 품고 미키 데자키 감독이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며 3년 동안 완성한 <주전장>을 직접 보니 과연 ‘뜨거운 감자’, 아니 그 이상의 현실을 담은 생생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주전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이전의 영화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민족주의나 감정을 선동하지도 않고, 특정 개인이나 굴곡진 인생에 치중하지도 않는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각각 입장이 다른 양편의 활동가, 역사가 등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빠르고 감각적인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클로즈업으로 한껏 당겨놓은 컷의 시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 즉, 주 당사자가 아니라 다소 해맑아 보이는 일본 우익 정점의 구성원들과, 반대편에 선 인물들의 얼굴과 발언을 향해 바짝 다가서 있다. 감독의 본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오른편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건 일본 내외 우익들이고, 일본의 소수파 역사학자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국내외 활동가 등의 시점은 대부분 왼편에서 시작한다. 우연이라면 더 재밌는 구성이다. 

여러 차례 증언을 기록하며 쌓인 과거의 영상과 현재의 영상이 맞부딪히며 증언 속의 진실을 깨알같이 확인하고 넘어가는 장면도 (일본계) 젊은 미국인 감독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유머감각으로 채워져 있다.
<주전장>은 재기발랄함에만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으로 향할수록, 조금씩 고조되는 전쟁 분위기의 음향효과와 함께 더 이상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꾸짖는 제국주의 일본 소년병 출신 노인의 발언에 이르러서는, 영화 시작에서부터 켜켜이 쌓인 서늘한 공포, 분노가 이를 다시 냉정하게 잠재우는 선명한 이성으로 몸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며 조용히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미 (일본 내에서) 기록된 역사가 진실이 아니라고 증언하는 목격자의 형형한 눈빛은, 어쩌면 평화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세상을 바라는 모든 대중과, 평화가 꿈처럼 아득한 시절의 피해자들을 동시에 대변하는 가장 낮은 시선일 지도 모른다. 

미키 데자키는 그간 일본 우익들이 증명할 방법이나 증거가 없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일부의 증언일 뿐이라며 수차례 폄훼했던 ‘피해자들의 말’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 실제로 아무 증명도 하지 못하는 우익들 스스로의 속빈 증언(망언)들을 3년에 걸쳐 차곡차곡 ‘증빙자료’로써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 입장의 활동가들, 역사가들, 피해자들의 시선은 상대적으로 냉정하고 고요하며, 오히려 제3자적인 배경으로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다.

<주전장>에서도 다뤘다시피 아베 정부는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게 가능했던 메이지유신 시대의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퇴행하고 있다. 우리가 무관심한 동안 일본의 평화헌법이 눈 깜짝할 사이 휴지조각이 된다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전쟁)’에 죄 없는 시민들이 다시금 총알받이로 희생된다고 해도 가책과 책임이 없는 야만의 시대가 순식간에 엄습할 것이다. 
<주전장>이 과거가 되는 그 날까지 시민들은 양심의 눈초리를 아직 거둘 수가 없다. 무조건적인 민족주의나 불매운동을 넘어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의 작은 조각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독립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상영관 확보가 힘든 현실에서 이미 3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영화 <주전장>을 찾았다. 영화의 주제가 비단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미키 데자키 감독은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에 호응하며 이번 주말 서울극장 인디스페이스에서 2차 내한 일정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작은 섬 남해에서 독립영화 상영조차 쉽지 않은 형편 속에 진행 중인 <2019 시골영화제> 또한 8월의 주 상영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주제 <꽃할머니>로 잘 알려진 권윤덕 작가의 끈질긴 평화의 여정을 기록한 작품 <그리고 싶은 것>(권효 감독)을 선정했다. 
마찬가지로 ‘뜨거운 감자’인 북한과 이산, 통일을 다룬 <이빨 두 개>, <여보세요>를 함께 상영한다. 부대행사인 권윤덕 작가의 작품 초청 기획 전시에도 군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삼삼오오 모여들기를 기원한다.

정보름 (둥지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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