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절

                    -이상미-


오래 버려 둔
빈 절의 주인은
아주 크고 온전한
한분의 고요이시다

티끌이 일지 않도록
소리를 다무신 채
빈 절간 안을 쓸고 계시다

때때로
만리 밖을 떠돌던 바람

뼈 한올 걸치지 않은
지친 그의 몸속에서
동자승 닮은 풀씨하나 깨우기도 하신다

놀라워라

못자국도 내지 않고
허공 속에 지으신
저 열락의 문

흔적 없는 그 길을 찾아야
나는 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시작노트-
모두가 떠나고 없는 오래된 빈 절은
벗어나지 못하는 상상력의 구도 속에 늘 잠재해 있었다.
어릴 적,  빈절을 들어서면 알수없는 위압감에 눌려
엄마 손을 놓고 멀리 달아나곤 했다.
그렇게 먼발취서 훔쳐만 보던 절 간에
밤이면 달빛이 내려와 고요히 빈절을 쓸고 있었다.
티끌하나도 일지 않은 절간의 마당에는 바람이 던져놓은
풀씨가 이듬해 예쁜 꽃을 피워내고
도란도란 소리없는 경전들로 빈 절은 고요롭게 북적거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들은 누구의 영역일까?
밤이면 우주와 마주보고 앉아 천기를 누설하는
겁없는 행위로 인해 나는 가장 건강한 사치인
시를 쓰는 것은 아닌지
오늘밤도 생각해 본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