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상생활 한 가운데서 없어서는 안 될 게 있다면 무엇일까.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마을이라 하면,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하면 얼굴 마주 보며 도담도담 이야기 나누며 차 한잔 기울일 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그곳이 뭇 사람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노인의 고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데 누가 올 것인가 하는 지청구 따위는 가만히 넣어두자.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박범신의 소설 <은교> 속의 대사가 떠오르는 곳. 남해군 고현면이다.

이러한 고현면의 중앙인 고현공설시장 앞에 자그마한 동네 공간이 생겼다. ‘카페 봄날’. 봄날의 주인장은 이명선 씨. 1954년생이라는 숫자가 믿겨 지지 않는 뽀얀 얼굴의 그녀가 미소로 반겨주었다.

여기 사람이 있기에

카페 봄날을 열었다

 

우리에게는 탑동이라는 지명으로 더 유명한 고현면 소재지인 중앙동. 하지만 ‘중앙’ 이라는 지명과 달리 한적하기 그지없는 곳이라 카페가 들어서서 반가운 마음만큼이나 처음엔 의아했다.

안을 열고 들어가 보면 더 놀랍다. 읍내에는 여러 옷가게가 있지만 이곳 고현면에서는 식당이 대부분인데, 여기 가면 원피스와 블라우스 등 여성 의류들이 반겨주었다. 그뿐이랴. 가방과 핸드백은 물론이며 다양한 종류의 은제품을 비롯한 엑세서리가 즐비하다. 마치 자그마한 잡화점 같은 곳이랄까.

주인장 이명선 씨는 “천동 달실에 쓰러져가는 촌집을 사서 전부 수리해 저만의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살고 있다” 며 “워낙 도자기와 커피 등 좋아하는 건 많은 데 지척에서 즐길 곳이 없어 제집 앞에서 작은 컨테이너를 두고 ‘테이크아웃’ 으로 커피를 해본 적도 있다. 고작 대여섯 가구 사는 동네에서도 수요가 있는 걸 느끼고 전문 공간을 내보자는 판단이 섰다” 며 가게를 열게 된 배경을 들려주었다.

장사가 되겠느냐는 기우에 그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며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동네라 이런 장사가 되겠나 싶다가도 그분들도 이런 곳이 없어 ‘못’ 누렸던 것이지, 있으니 즐겨 찾아 주시더라”고 말했다.

 

가는데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닌 백세시대

일이 필요하다

 

올해 예순여섯. 2년전인 예순넷에 남해로의 과감한 귀촌을 한 그를 두고 부산 사는 친구들은 다들 ‘용감하다’ 고 난리였다고. 그러나 그녀는 명확했다. “솔직히 한 번뿐인 인생이지 않나요. 노후도 길어졌고 하늘나라 가는데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니니 제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죠. 그리고 숨만 쉬어도 돈은 나가는 게 인생 이치인 만큼 ‘일’ 도 꼭 필요했죠” 그런 마음으로 임했기에 남해에서의 삶도 하나씩 행해 갈 수 있었으리라.

하나뿐인 딸은 미국으로 이민 가 잘 살고 있으니 크게 걸릴 것도 없었다는 명선 씨. 건강이 좋지 않은 형부와 언니에게도 공기 좋고 깨끗한 남해살이가 좋을 것 같아 셋이 살기 위해 아담하게 집을 꾸렸다. 평생 주부로만 살면서 수십 년간 도자기를 만져온 그녀였지만 갑자기 닥친 남편의 죽음을 딛고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50대 초반에 시작하게 된 중국에서의 물품 수입. 휴대폰 걸이를 시작으로 각종 팬시용품, 은제품 수입 등으로 통해 장사에 눈을 떴다고.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남해에서도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명선 씨는 “오래 살려면 친구가 필요하잖아요. 남해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여성 의류와 액서서리 등을 파는 ‘옷가게’ 로 먼저 허가받았다” 고 설명했다. 카페 허가를 앞두고 고민이 많은 그녀. 이유인즉슨 “본래 가게 자리 그대로, 형태 그대로 두고 깨끗하게 리모델링을 했을 뿐인데, 보건소 허락을 받으려 보니 이전 주인분이 조금 측량이 잘못된 부분이 있단 걸 뒤늦게 알게 돼 다시 허물고 공사를 해야 하나 걱정이 크다” 고 한다.

명선 씨는 “많은 귀촌지 중 남해를 택했다는 것은 ‘자연 속에 살겠다’ 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으로 더 다가서다보면 대개는 촌집인 경우인데 건축문제나 각종 허가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가 가장 힘든 과제”라고 했다.

 

겨울남해여행에서

새파란 남해에 반했다

 

봄날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남해의 생동감을 사랑해 귀촌하게 되었다는 명선 씨. 그는 “모든 게 막 피어나는 봄을 남해는 닮았다. 특히 따뜻한 곳인 남해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게 겨울여행에서였다. 죄다 얼고 추운데 반해 남해는 겨울에도 새파랬다. 시금치밭 때문에 온통 새파란 남해를 보고 여기서 텃밭 가꾸며 살고 싶다는 꿈이 피었다” 고 한다.

이 좋은 남해에 귀촌한 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먼저 다가가기’ 를 권했다. “솔직히 우리가 좋아서 남해를 온 거지, 여기 사시는 분들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분들이지 않나. 그렇다면 귀촌한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 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먼저 내 드리면서 친해지면 남해사람들 속정이 얼마나 깊은지 반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며 돈독하게 살아가는 팁을 전했다. 명선 씨는 “내가 긍정적이어서 그런 건지, 전 그저 오늘 충실하게 살면 내일은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요”하고 웃었다. “살아보니 헛된 시간은 없더라. 쓰든 맵건 훗날 써먹을 날이 언제고 있는 게 인생이더라”는 따스한 말이 봄날처럼 머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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