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남해제일고등학교 학부모와 학생들과 남해투어를 하면서 창선(昌善)을 지나면서, “창선의 한자를 풀이해 보면 ‘선함이 창성해라.’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말이 씨 된다고 하니 창선사람들은 다 착하겠지요?” 했더니 그때 어떤 학부모님이,“그런데 왜 창선사람들이 고춧가루 서 말을 먹고 물밑 삼 십리를 간다고 했을까요? 그리고 창선사람 한 사람이 남해사람 열사람을 이긴다는 말도 있고…” “아, 워낙 창선사람이 생활력이 강하니 역설적으로 선해지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고는 웃었다.

그러면서 “창선이 고향입니까?”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을 하시면서 창선사람은 정말 독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 말들이 듣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창선이란 뜻이 그러하니 선함이 창성한 곳이라고 자랑도 하시고 자부심을 가지시라고 말하면서 차안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선함이 창성하길 바라는 창선에는 부자로 젖어 살라고 하는 마을도 있다. 부윤(富潤)은 부자 부(富)에 젖을 윤(潤)이다. 부자로 젖어서 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한자를 직역했을 뿐이다.

한자는 뜻글자인지라 우리같이 부족한 지식으로서는 직역만 할 뿐 더 큰 의미를 담아내지는 못 한다. 그래서 부자에 젖어 사는 마을로 연상한다. 사실 인간은 우선 부를 축척하고 그 다음으로 명예를 탐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마흔까지는 근검절약을 해서 경제력을 갖추고 마흔 이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자 했다.

현대의 창업주 정주영회장도 크게 부를 축척한 뒤에 ‘대통령’후보로 나가기도 하는 것을 보면 보편적인 사람은 우선은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된 뒤에는 명예도 탐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그런데 마을이름에 벌써 부자에 젖어 살라고 했으니 마을이름으로서는 삼동면의 둔촌마을만큼이나 좋다. 부처님께서 ‘말이 씨 된다.’고 했는데 부윤사람들은 다 부자인지 모르겠지만 창선도 원고를 쓰기위해 창선도를 한 바퀴 돌면서 부윤마을을 지나는데 마을 뒷산에 대규모 태양광 시설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최소한 한 사람은 엄청난 부자가 되겠구나.’ 싶었다. 태양광시설이 그 정도면 한 달에 최소한 천 만 원 이상의 수익은 보장이 될 것 같았다. 태양광시설이 반듯하고 정갈하게 잘 정돈 되어 있었다. 부윤마을 각 가정의 경제력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대부분 여유롭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사실 부윤마을 바로 옆에 ‘사우스케이프 오너스클럽’이 생긴 것을 보면 부윤도 약간 예언성지명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창선도에는 조선시대 말목장이 있었다.

‘창선면지’를 보면 예전에 창선에는 말목장이 있었는데 지금의 창선초등학교 자리가 ‘창선목장 감목관’ 자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 말목장를 관리하던 감목관들에게 선정비가 내려졌는데 그 사람들에게 내려졌던 선정비가 지금 부윤1리에 있다. 대부분의 선정비의 주소가 ‘남해 창선면 부윤1리 면민동산’ 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수산에서 적량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많은 비가 모여 있는 곳인 듯하다.

‘안경 휼민선정비, 이희오 선정비, 김동남 애민선정비, 박민엽 거사비, 김목순 영세불망비, 김사목 영세불망비, 장덕용 불망비, 심정고 구폐불망비, 원현창 구폐선정비…’ 참 많다. 시대적으로 보면 다 조선시대에 세운 비들이다. 창선목장 감독관으로 왔던 관리들이 다 선정을 배 푼 것인지, 아님 그 당시는 진주관할이었는데 진주 사람들이 상이 후해서 그랬는지 참 많은 감독관의 선정비, 거사비, 불망비들이 올망졸망 서 있다.

공자님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 “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공은 자기가 부자라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물었던 것 같은데 공자님은 “그것도 좋다.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를 아는 것만 못하다.” 고 했다.

창선의 부윤마을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름처럼 창선을 다녀 간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비도 세우고 그런 비를 세워둔 곳을 지나면 부윤사람들도 마음이 뿌듯했을 것이다.

오룡(五龍)마을은 송정, 중촌, 먹골, 오룡, 노천마을 하천이 용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라 오룡이라 했다는 말과 오룡마을의 뒷산이 다섯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 오룡이라 했다는 말이 전한다.

용이 한 마리만 있어도 예사롭지 않을 텐데 다섯 마리 용이라니…. 용이라는 것은 상상속의 동물인지라 우리는 직접 보지를 못 하고 그림으로만 보았을 뿐인데 태몽으로 용꿈을 꾼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 같았다.

작가 박경리도 어머니가 ‘두 눈이 눈깔사탕같이 파아랗고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태몽을 꾸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 박경리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용 한 마리를 꿈에 보아도 이런 어마어마한 결과로 나타나는데 오룡마을은 용 다섯 마리의 형태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아마 많은 인재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탈리아 메디치가처럼 경제적인 부를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투자하여 ‘르네상스’란 문화시대가 열렸듯이 남해도 부자가 많아서 그런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하여 부윤과 오룡마을에서는 자꾸만 이 말이 입에서 맴돈다.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자이면서 예를 아는 사람이 많은 부윤 그리고 통영하면 박경리 하듯이 남해하면 떠오르는 예술가ooo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룡에서 무더기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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