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영적(靈的)이란 인간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정신적 자양분으로 이를 통하여 더 큰 자아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적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실생활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삶의 속성이 소비 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소비 패턴은 정신영역과 대비되는 것으로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되는 욕념과 욕망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욕념과 욕망은 소유 여하에 따라 불안과 초조, 근심과 걱정을 수반하면서 마음에 적지 않게 장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편, 일반적인 평가에 준한 영적은 어떤 이적을 행한다거나 남들이 하지 못하는 기이한 능력을 행사함으로써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이는 나와는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영적 가치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요 신비한 이적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적이란 어떤 특별한 것이라는 개념보다 사랑과 자비와 공경의 천성을 안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평가가 정해지는 것으로 귀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라도 사랑과 자비의 본성을 담아내기만 한다면 영적을 일으킬 가능성은 항시 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이는 관점에서 나의 밖에서 펼쳐지는 넓고 넓은 세상이 마치 나의 중심인양 착각하기 쉽습니다. 
나의 밖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맨눈으로 인지되는 문화와 풍습 모두가 내 안에서 교차하는 까닭에 그것이 마치 나의 영적 영역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밖의 실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감광(感光)으로 투사되고 또 이를 판별할 수 있으니 그것이 나의 중심축을 이루는 근간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실상을 뒷받침할 영적 실상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더욱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는 차원의 이면에 드리워진 생명의 실상을 제대로 보려면 실상이 교차하는 내면을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성에서 영적(靈的)은 생각과 감정에 따라 매 순간 상승과 침하를 거듭하면서 내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 나의 마음 상태를 기준으로 위쪽으로 상승할 영적 에너지는 나를 순수하게 강화하면서 긍정과 친절 → 자비와 사랑 → 자애와 헌신 → 현자(賢者) → 성인(聖人)의 순으로 옮겨지고 그 아래로 펼쳐질 범인(凡人)의 영적 에너지는 나를 점점 약화하면서 부정 → 분노와 슬픔 → 두려움과 허무감 → 고독 → 자포자기 등으로 잇는 것입니다. 
영적이란 결국 사람의 생각과 감정 여하에 따라 성인의 영적으로도 범인(凡人)의 영적으로도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에서 나의 영적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를 갸름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영적은 순수한 정신과 영혼을 수반한다는 차원에서 평소의 언행(言行)이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갖는 대화의 와중에서도 영적 현상을 체감할 수 있는데 그 실례로서 본다면 이른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편인가 아닌가? 남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 버리고 내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가? 험담이나 비방의 정도는 어떤가? 크고 작은 분노가 수시로 일어나 평소에 매우 예민한 성정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가? 특히 내면에 잠재된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져 자신도 모르게 손짓이나 몸동작이 거칠 거나 악수하는 손길에도 은연중 힘이 들어가고 있는 현상은 아닌가? 불편하거나 차거나 딱딱하거나 어둡고 불안한 기색 역시 어떤 사유로 인해 약화한 영적 현상의 단면이라면 이를 고칠 방도를 어떤 것인가? 이러한 사례를 비유하여 볼 때 높은 수준의 영적이란 인습과 풍습이 교차하는 가운데 바깥으로부터 경험한 정도가 비록 분노를 일으킬 수준이라 하여도 이를 내 안에서는 더욱 유연한 기품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시비지심을 평정된 심리로써 가라앉히고 다스릴 수 있는 숙련된 장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반응하는 여러 감정적 요소에 종속되지 않도록 명상과 묵상을 권유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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