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 분과는 지난 2월 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만열 문화재 위원 외 전문위원, 그리고 관련 직원 등과 모임을 갖고 12건의 문화재 등록을 의결했다.

그리고 이날 2건의 문화재 유보목록과 8건의 문화재 등록 제외목록을 발표했다.

등록유보목록 2건과 등록제외목록 8건은 여기서 설명을 피하기로 하고 문화재로 등록된 목록 12건을 열거해보기로 한다.

1. 서울 북촌문화센터(구 민혀익 가옥)
2. 서울 혜화동 성당
3.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4. 충남 공주의 금강철교
5. 충남 공주 중학동의 구 선교사 가옥
6. 경남 남해 덕신리 하천재
7. 울릉도 도동 이영관 가옥(구 일본인 가옥)
8. 서울 구 대법원 청사
9. 서울 시청 을지로 별관(구 미국문화원)
10. 전남 고흥 구 녹동 우편소
11. 전남 목포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구 목포사범학교 본관)
12. 서울 창덕궁의 벽화 6점 등이다.

이상 예를 든 12건의 문화재 가운데 우리 고장의 재실(齋室) 건물 「하천재」가 포함되는 영광을 안았기로 이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 보기로 한다.

이 「하천재」는 밀양 박씨 하천공 집안[宗中(종중)]의 재실이다.

재실이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은 건물을 말하는데 문화재위원회에서 고시한 내용을 옮겨본다.

등록문화재 제234호
소재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 958번지
문화재명: 「남해 덕신리 하천재」
단층 건물 네 동(棟)으로 되어 있는데 각 건물의 연면적은 ▲하천재(荷泉齋)- 69.3㎡, ▲경모헌(景慕軒)- 42.9㎡, ▲세심헌(洗心軒)- 29.7㎡, ▲옥산문(玉山門)- 16.5㎡, ▲화장실- 9.9㎡로 연건평은 168.3㎡이다.


「하천재」는 1938년에 지어진 사묘재실로 본건물[하천재]을 경묘헌과 세심헌이 대칭으로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고 대문채와 화장실을 포함하여 모두 5채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인 「하천재」는 전통적인 재실건축의 강당과 사당의 기능을 한 건물에 결합한 형태로 평면 중앙부에 사당을 두고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 근대기에 들어와 강다에다 사당을 병설하는 재실건축의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의친왕이 쓴 「하천재」 편액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인 오세창 선생과 같은 서예가들의 글씨가 남아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어 건축적, 문화사적 가치가 있다.

이 건물은 하천공 박병집 선생의 아드님이던 박채규 선생이 사묘재실을 위하여 1938년 3월 20일 지은 전통 한옥건물로 지금은 하천공의 손자인 박종환 선생이 다도 전파와 다도 교육을 위하여 하천다숙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하천재」는 남해대교에서 남해읍 방향으로 들어오다 덕신공원 왼쪽 방향 노량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남방으로 마주 보이는 덕신재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건물을 찾아가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농로를 이용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쉽게 이르자면 덕신 초등학교에서 보면 건너편 동남방 덕신재 산기슭이 되는 지점이다.
「하천재」를 조사한 전문가의 설명을 더 들어본다.

“이 건물은 1938년 건축한 근대기 재실건축이다. 수려한 산지 경사지를 3단으로 정지하고 거기에 강당인 「하천재」를 비롯하여 경모헌, 세심헌, 대문채[옥산문] 등 4동의 건물을  ‘ㅁ 자형’으로 건축했다. 특히 강당인 「하천재」는 전통적인 재실건축의 강당과 사당의 기능을 한 건물에 결합한 형태로 평면 중앙부에 사당을 두고 선조의 위패를 모셨다.

이는 근대기에 들어와 강당에 사당을 병설하는 재실건축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건물의 평면 및 입면[창호], 구조, 재료[적벽돌] 등에서 근대적인 특징이 보이는바 근대기 재실건축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하천재」는 전통적인 재실이 근대기에 들어와 기능과 건축형식면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특징있는 재실건축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각 건물에 부착된 주련(柱聯·기둥이나 바람벽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씨)과 편액의 글씨 등은 근재기에 이름있던 명필가 위창 오세창, 석촌 윤용구, 성파 하동주 등이 쓴 글씨로 이것 자체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건물과 함께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78년에 오성다도(五星茶道)를 창설한 박종환 선생이 이곳에서 「사단법인 한국차인회」를 결성하고 이후 많은 다도인(茶道人)을 교육했다. 지금도 「하천재」는 오성다도의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하천재」는 근대기 재실건축으로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바 등록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사료된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하천재」의 경우 근대화 시기 지방의 한옥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주택으로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상태로 근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사료된다.

 현재 차실로 사용되고 있는 내부공간의 경우도 일부를 제외하고 원형이 잘 남아있는 상태이다. 세심헌, 경모헌 등은 차실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 내부 공간을 철거하여 새로 신축된 부분의 원형을 확인할 수 없으나 대문채, 창고 등은 잘 남아있고 특히 근대적 재료가 다수 사용되고 있어 당시의 주거상황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소유자의 경우 근대 문화재 등록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자체와의 협조를 통해 관리 및 보존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본 주택의 경우 남해지역의 주거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건축물로 사료된다. 하지만 현재 마을과 격리되어 관리상 어려운 점이 있으며 당시 주택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이를 통합하여 관리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04년과 2005년 「가천 다랑이 논(명승제 15호)」과 「용문사 괘불탱(보물 제1446호)」에 이어 「하천재」가 등록문화재 234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아 경사가 겹친 셈이다.

이는 밀양 박씨 하천공 종중의 영광인 동시에 이 고장의 자라이기도 하다. 군민 모두는 문화재의 관리와 보호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을 끝맺으면서 여태껏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가 남는다.
「하천재」의 편액과 주련의 글씨가 위창 오세창, 석촌 윤용구, 성파 하동주 등 근대기의 내노라 하는 서예 대가들의 솜씨라고 앞에서 밝혔다.

위창, 성파 선생의 글씨는 두고라도 석촌 선생의 글씨는 남해읍 서변동 소재 효자문[영모문]의 「영모문」이라는 편액 글씨가 석촌 윤용구 선생 솜씨다.

1926년의 일이다. 그런면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38년 이 「하천재」가 완공되었다면 어떤 연유로, 그리고 선생과 남해와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그런 명필을 두 번씩이나 받아오는 행운이 있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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