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으로 연결된 아름다운 삶
나눔으로 연결된 아름다운 삶
  • 남해신문
  • 승인 2019.07.19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마음을 내어 나누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도 우주와 자연 혹은 다른 분의 잠재된 역량(장점, 창조물)과 개인의 선의의 능력이 나눔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눔의 이치를 생명의 영원성에 견주어보면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오며 오는 것은 반드시 돌아가 일체가 순환하고 있음이 여러 선각자의 어록을 통하여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것이 나에게로, 나의 모든 것이 타인과 우주에 퍼져나갈 의로운 에너지의 상생 협업은 진화하는 마음 길에서 한 척도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를 일러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 (0sho Rajneesh)는 “만약 가진 바가 아무것도 없다면 그대의 존재를 나누어라, 마음에 사랑을 지니고 손을 내밀며 다른 사람에게로 가라, 어떤 사람도 낯선 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마음을 나눈다면 아무도 낯선 사람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설정 속에서 ‘누구든지 내 몸과 같이’(애린여기-愛隣如己, 격암유록 末中連 편)라고 설파한 선열들의 가르침 또한 오늘의 우리가 담아내어야 할 소중한 담론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주고받는 것과 오고 가는 것의 기류를 내 몸과 같이 하는 동시성, 동질성, 현재형으로 새롭게 인지하는 것입니다. 
필자는 얼마 전 도심의 대로변에서 지인과 약속된 곳으로 이동하던 중 우연히 절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터인지라 반갑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담의 시간 또한 자연히 길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여정을 나누는 자리인지라 마디마다 실린 중후감은 좌중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와의 이야기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 친구는 갑자기 가방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양말 한 다발이었습니다. 

오다가 우연히 점포에 들러 샀다며 누군가가 양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거라며 꼭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신으면 좋지 않나며 필자에게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너나 신지 왜 나에게 주느냐며 사양했지만, 그는 이 양말이 오기까지의 전 과정은 여러 사람의 정성이 연결된 것이어서 이를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반문합니다. 한참 동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특히 그가 보여준 따뜻한 정에 공감하면서 후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필자는 이미 선약이 되어 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약속된 찻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찻집에 거의 다다를 즈음 갑자기 불쑥 나타난 노숙인이 앞을 막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 손을 내밀면서 돈을 요구하는 그의 행동에 적잖게 당황하였지만, 양말조차 싣지 않은 모습이 몹시 힘들어 보여 마침 친구에게서 받은 양말 한 다발을 건네주었습니다. 조금 전 친구가 들려준 예감대로 “누군가 신어야 할 사람이 꼭 있을 거라는 진담이 즉시 현실에 나타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노숙인에게 양말이 전해진 것은 인연 된 사람들의 일치된 나눔이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오가는 가운데 나눔으로 연결된 물건이 결국 가장 선한 곳에 쓰이는 것으로 용도로 귀결된 것입니다. 비록 남루한 차림의 노숙인이었지만 그의 손에 쥐어준 양말 한 다발에 고무된 듯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 또한 인생 전체가 나눔으로 연결되었음을 감사히 여기며 그의 행운을 빌었습니다. 비록 친구로부터 받은 양말이었지만 마음으로 연결된 나눔이 서로를 유익하게 해주었다는 자긍심에 가슴이 뭉클해져 옴을 느끼었습니다. 이에 고무된 필자는 발걸음도 가볍게 지인과 약속한 약간은 외딴곳에 자리한 찻집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찻집은 마침 개업 1주년이라 이를 축하하기 위해 주인이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차뿐만이 아니라 예쁘게 포장된 기념품까지 제공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 할 수도 있겠지만, 찻집에 들어오기 전 노숙인까지 연결되었던 나눔의 온정을 고스라이 되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필자와 친구 그리고 노숙인 또 찻집 주인으로 이어지는 순연한 관계는 알게 모르게 나눔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이와 같은 사례가 아닐지라도 갖가지 형태로 이어지는 나눔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 세상은 그렇게 험악하지도 삭막하지도 않은 축복과 환희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가 지닌 마음의 상태에 따라 느낄 정도가 다르겠지만 받고 주는 것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이 고마운 세상에 보답하는 길은 한마음으로 자신을 이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