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남해문화원 사무국장·소설가)
김미숙(남해문화원 사무국장·소설가)

김미숙 씨는 현재 남해문화원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남해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2009년에는 남해유배문학 작품공모전에 단편소설 ‘가야지 애(愛)’로 우수상을 수상하여 문학과 먼저 인연을 맺은 글쟁이다. 그때 수상작은 두 개의 소설을 이어붙인 옴니버스식 작품으로, 후자에 나오는 두 번째 내용은 세종 때의 이야기로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러브스토리를 엮어낸 것이다. 우연히 어느 책 귀퉁이에서 일화 한 토막을 발견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고 확대시켰는데, 심사위원들은 흥미진진하면서도 흡인력을 갖게 했다는 좋은 평을 했다. 역사소설에 관심이 많았던 김 사무국장은 2년 후인 2011년 4월에는 한맥문학을 통해 중편소설 ‘선도화’가 당선작으로 선정되면서 신인작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조선 중종(14년)기묘사화 때 자암 김구 선생과 연산군 때 멸문지화를 당한 강금이라는 기생이 유배지 남해에서 겪은 일상과 애잔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중편소설로 다시 한 번 소설가의 기량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 작품이 당선된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그 옛날 남해에서의 유배생활과  그들이 남긴 숨결과 발자취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앞으로 9회 내지 10회 정도 연재하고자 한다. 많이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기 바란다.             -편집자 주 

 

이별
모녀는 바다 너머 꽃밭등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꽃 섬은 넘실거리는 은빛파도 넘어 슬픈 미소로 반기고 있었다. 연이 어머니는 악양루에서 바라본 동정호의 비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이 섬이 유배지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동정호의 군산(君山)처럼 아름다운 남해를 바라보는 모녀의 눈과 마음은 아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이 어머니는 지난 시간과 추억을 소중히 가슴에 담으며 북쪽 하늘 끝 도성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연이 아버지의 살을 비집고 흐르는 피는 심한 악취로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찢겨진 속살은 하얀 뼈를 서늘히 드러냈으며, 누런 고름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장독이 오른 엉덩이의 살들은 시꺼멓게 썩었고 피고름은 살 속의 누런 거머리처럼 악랄하게 파고들어갔다. 연이 아버지는 염증으로 인한 고열로 몇 번을 혼절하면서도 으스러진 몸을 이기며 유배길을 떠나야만 했다. 관군들의 매정함은 죽어가는 연이 아버지의 명을 재촉하는 듯 했다. 그는 관절이 꺾여버린 손을 힘겹게 추스르며 연이의 손을 잡아 보려했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손은 연이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연이야, 내 딸 연이야!”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끝없이 딸 연이를 불러보지만 허공에 맴돌 뿐이었다. 핏발이 서려 있는 눈으로 연이를 바라보는 아버지가 무섭고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두려웠다. 끝내 그는 진주 목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힘겹게 그의 옆을 지키던 어머니는 고통스럽게 참아 온 마음을 내려놓는 듯 했다. 창자를 끊어 내는듯한 어머니의 절규에 어미를 잃을까 어린 연이는 자꾸만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연이 아버지의 시신은 죽어서도 반역 죄인이었다. 제대로 수습되지 못하고 거적에 싸여 버려졌다. 연이는 거친 자갈밭에 팽개쳐진 아버지의 시신을 뒤로하고 맥없이 끌려 내려가야만 했다. 외롭게 세상에 버려진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고통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
연이 아버지는 연산군에게 여색을 탐하는 것을 금하고 선정을 베풀어 달라는 간곡한 상소를 올렸다. 그는 상소를 올린 죄로 관직을 삭탈 당한 후 남해현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결국, 유배지인 남해로 끌려 내려오다 진주 목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연이는 예기치 않은 불행을 작은 가슴으로 오롯이 끌어안아야만 했다. 한양 연희방의 집을 두고 남쪽바다 끝자락까지 가야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온 몸에 거머리처럼 붙어버린 불행 앞에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몸을 타고 흐를 뿐이었다. 
노량 포구를 지나 도착한 남해읍성 관아에서 모녀의 거처를 정해 주었다. 연이 어머니는 피붙이 하나 없는 유배지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관비로 살아가야 했다. 목구멍까지 설움이 차올랐다. 연이를 위해 살겠노라 다짐하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유배지의 겨울은 혹독했다. 문살에 붙어있는 얇은 종이 하나로 모진 해풍을 막아 내야 했다. 연이 어머니는 몸서리치는 추위에 얼어붙은 몸보다 남편을 잃은 상실감이 그녀를 더 시리게 했다.
쩍쩍 갈라진 척박한 땅을 쉼 없이 쪼아대는 거친 호미질과 발조차 움직이기 힘든 갯벌에서 바래를 하고 저녁엔 길쌈을 해야 했다. 남해섬 여인들은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억척스럽게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연이 어머니는 남자도 힘든 똥장군을 지고 비탈길 다락논까지 기어올라 똥거름을 져 나르는 여인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남해에서 나고 자란 관비 모천댁은 그녀에게 농삿일과 바랫일을 가르쳐 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모천댁은 배고파 징징되는 어린 아이에게 귀찮은 듯 빈 젖을 물리고 부엌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허기진 배를 푸성귀로 채웠다. 아이는 어미의 빈 젖을 움켜쥐며 한 모금이라도 더 목구멍을 적시기 위해 애쓰지만 그녀의 척박한 삶만큼 말라있는 젖은 어미와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듯 했다. 배고파 징징대는 아이를 귀찮은 듯 떼어내는 모천댁의 거칠고 무심한 손짓과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허리에 새끼줄을 동여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다부진 모습 뒤에는 삶에 지친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따라가고 있었다.  모천 댁은 해가 넘어갈 무렵 그녀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나뭇짐을 머리에 이고 내려왔다. 그녀의 머리에 올린 따발이의 끈은 악문 이빨 사이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아 보였다.  애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여종으로 태어나 짐승처럼 일하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발정 난 남자에게 끌려가 고문과 같은 초야를 치르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진 삶에 자신을 억척스럽게 던지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뭘 그리 봐 삿소. 쎄가 만발이나 빠질 것 같은데. 내일은 같이 까꾸막 넘어 갱번가서 바래도 허고 파래도 뜯어야 헌게 게을 피우지 마소. 내보다 나도 많아 보이는데 나 값을 해야 되지 않것소. 한양댁! 비릉 위에 파래는 들랏소. 넘어 아새끼를 씨거 조질라카나. 아아 씻길 세가 있시먼 길쌈이나 하지.”

연이 어머니는 모천댁의 퉁명스럽고 빠른 남해 말을 알아듣기 위해 그녀의 입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모천 댁은 연이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무명포대기로 업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렸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고마움과 남해 특유의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모천 댁은 절구통에 마늘, 양파, 돌배를 넣어 투박스럽게 절구질을 했다. 그리고 연이 어머니도 무를 바닷물에 절이기 위해 모천 댁처럼 따발이를 하고 머리에 바구니를 얹었다. 대바구니 가득한 무는 따발이의 끈을 악물게 했다. 절인 무를 머리에 이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힘겨워 보였다. 모천 댁은 무를 절구통에 있는 투박한 양념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양반가의 정갈한 음식에 익숙해 있던 연이 어머니는 투박한 김치가 어색했다. 하지만 모천 댁이 시키는 대로 겨울을 날 동치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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