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어느샌가 여름의 또 다른 말은 ‘휴가’가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여름이 우리 곁에  다가 앉았는지 알 길 없지만 몽글몽글 솟아나는 땀방울은 자꾸만 부추긴다. 떠나자고, 이제 그만 떠나라고. 떠나기 좋은 곳이야 수도 없을 테지만 보물섬 남해군만큼 좋은 바다가 또 있을까. 보물섬이라는 명성답게 해수욕장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곳이 바로 남해 아닌가.
지난 5일 가장 먼저 개장해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 상주면의 은모래비치. 그에 질세라 바로 옆의 미조면의 대표 해수욕장인 송정솔바람해변은 2킬로미터에 이르는 백사장과 100년 이상 바닷바람을 맞고 커 온 해송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뿐이랴. 이웃 설리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반대편인 남면으로 가면 두곡과 월포해수욕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두곡마을 앞바다, 월포마을 앞바다뿐 아니라 수온이 따뜻한 사촌해수욕장도 이웃해 있다. 이렇게 잘 알려진 유명한 곳 외에도 사실 남해는 바다를 인접한 어딜 가더라도 그 나름의 운치와 낭만이 있다. 마치 미조면과 상주면 사이의 경계마을인 ‘천하마을’ 몽돌해변처럼 말이다. 

작다, 작다 했는데 이렇게나 아담할 수가

상주해수욕장에서 3킬로미터 남짓 달렸을까? 미조면으로 들어가기 전 아래로 빠지는 길이 있다. 마을길따라 내려오니 마을회관과 함께 정겨운 시골카페가 반겨준다.
딱 부러지는 이름도 없다. 그냥 ‘시골카페’일 뿐이다. 마을회관 앞 큰 나무처럼 이곳 역시 천하마을을 오랜 시간 지켜온듯하다. 문을 빠끔 열고 들어가 보았다. 1947년생인 허소순 어머니께서 40년 넘도록 운영해오셨다고 한다. 이날은 허소순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고 대신 따님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이름은 박명희. 그는 “아는 만큼 정성껏 알려 드리겠다”며 운을 떼더니 “한 30세대 정도가 사는 마을인데 아마도 미조면에서 제일 작은 마을일 것”이라며 “재밌는 건 이 작은 마을이 30년 전만 해도 마을 안 냇가를 기준으로 반은 상주면민, 반은 미조면민으로 주민이 양분돼 있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시골 카페 맞은편으로 마을만큼이나 아담한 숲이 있어 물었더니 “곧 휴가철이니 이곳에 텐트 치고 숙박하는 분들이 제법 찾아 온다”며 “나무 바로 아래에서 야영할 수 있어 운치 있고 나무 옆에 냇가가 있어 열대야를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고 말했다.
천하마을은 방파제가 없는 몇 안 되는 바닷가 동네였다. 그래서일까? 바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보들보들한 은모래 대신 몽당한 몽돌이 가득한 해변. 있는 거라곤 무뚝뚝해 보이는 해변을 알리는 길에 늘어진 벽과 작은 느티나무 숲, 거기에 침묵뿐이었다. 그게 좋았던 것일까? 여러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다녀갔다. 

방파제 없는 바닷가마을…
조곤조곤한 ‘드라마 촬영지’

이경희 작가가 쓴 2003년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의 촬영지였다. 이제는 김태희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가수 비와 ‘공블리’ 공효진이 나온 드라마. 이들이 이곳을 거닐고 이곳에 머물렀다니.
비교적 최근인 2018년 초에는 OCN 스릴러 <작은 신의 아이들>도 촬영했다고 하는데 촬영지를 설명한 자그마한 입간판조차 없다 보니 촬영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마을 사람들도 딱히 자랑하지 않는다. 수선떨지 않는 조용함이 어쩌면 이 마을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을 안으로 더 걸어 내려가 본다. 몽돌해변과 인접한 하천이 깨끗하게 흐른다. ‘내 아래에 있는 마을’, 천하마을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와닿는다. 냇가 근처의 느티나무 숲은 조용히 여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야 밝히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한 애독자로부터 시작된 천하마을 산책은 느릿느릿 끝이 났다. 크고 번쩍이는 건 단 하나도 없는 마을. 빠름과 편리와는 먼발치 떨어진 이곳은 그저 조용히 사색하기 좋은 마을, 고양이 두 마리가 온 숲을 차지하고 드러눕기 좋은 고요한 마을일 뿐이다. 천하마을, 복잡다단한 여름을 벗어나고픈 벗에게 기꺼이 추천해주고픈 바닷가가 가만히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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