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5월 출범한 재경남해군향우회가 올해 60년 회갑을 맞이했다. 20대 때인 1965년부터 재경남해군향우회에서 활동하며 50년 넘게 군향우회 발전에 함께해 온 강태욱(80) 대진코스탈 회장을 만나 군향우회 60년의 감회를 들어보았다. (주)대진코스탈은 문서세단기를 생산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시장을 넓히고 있는 국내 최고의 기술형 수출 중소기업이다.

▲올해가 군향우회 창립 60주년이다. 회장님께서는 군향우회 초창기부터 활동하신 산증인으로 알고 있다. 감회를 말씀해 달라.
“군향우회를 1965년부터 나갔다.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을 올라왔는데 아무 연고가 없기에 향우들을 찾기 위해 향우회를 찾았다. 그 당시에는 50여명의 향우님들이 모였는데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다. 그때 20대인 내가 제일 어렸다. 처음 서울에 와서 향우회에서 선배님들을 알고 도움을 받았다. 그때부터 고향과 향우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향우회와 고향에 꾸준한 봉사를 해오고 있다.”

▲32년 전에 뜻있는 분들이 자금을 모아서 오피스텔을 마련해 군향우회 사무실로 기증하셨다. 당시 어떻게 해서 이 일이 추진되었는지 설명해 주시면.
“당시 군향우회 사무실이 없어 임대를 내어 이곳 저곳을 옮겨 다녔는데 신동관 의원의 형님인 신동춘 고문이 제6대 군향우회 회장을 할 무렵 고향사랑에 앞장서고 뜻 있는 32분들과 신 회장이  주축이 되어 사무실을 마련하자고 결의하고 모금 운동을 벌였다.”

▲당시에 100만원은 거금이라 선뜻 내놓기가 어려웠을 텐데 어떤 분들이 동참하셨는지 면면을 소개해달라.
(가나다순) 강태욱(남면), (故)고정남(설천), 김영조(서면), (故)김용웅(읍), 김욱태(읍), 김유수(읍), (故)김일두(이동 ), (故)김정봉(고현), 류명춘(서면), 류창수(이동), 박익주(남면), (故)박조웅(이동), 박현권(읍), 박희태(이동), (故)신동춘(서면), 유광사(설천), (故)이수현(재일동포), (故)원정희(창선), 정영삼(창선), 정영희(읍), (故)정성환(창선), 정응진(창선), (故)정왕선(읍), 최봉구(읍), 최석문(삼동), 최영태(삼동), (故)한호주(읍) 향우들이셨다.” 

▲군향우회 사무실 마련에 동참하셨던 분들의 뜻은 무엇이었나?
“투철한 애향심을 가진 선배님들이 사무실도 없이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것이 안타까워 기금마련에 나섰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이역만리 서울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군향우회 사무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신동춘 회장과 32분의 뜻있는 향우들이 동참했다. 그때 신동관 의원이 경호차장으로 계실 때 형님이 군향우회 회장으로 계셔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어 군향우회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군향우회 사무실까지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다면, 당시 군향우회는 상당히 활성화 되어 있었을 것 같다. 그때의 향우회 활동을 회고해 보신다면.
“당시 신동관 의원은 고향 선후배들에게 최선을 다해 베푼 파워맨이었고 형님이 향우회 회장으로 계셔서 음으로 양으로 발전을 가져왔다. 남해향우들이 프라이드를 가지게 된 동기가 신동관 의원께서 대통령 경호차장을 하기 때문에 힘이 있었고 남해향우들이 굉장한 자긍심을 가졌다. 고향 후배들을 키워준 정말 고맙고 훌륭한 인물이었다.”

▲당시와 비교해서 현재의 향우회는 어떻게 평가하나? 어떤 것이 모자라고, 어떤 것이 나아졌나?
“당시 향우회장이 돈을 내지 않아도 십시일반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었다. 향우회장은 고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여 무척 존경을 받았다. 요즈음은 정보화시대라 향우들이 고향분들에게 큰 역할이 없지만 옛날에는 매스컴이 발달하지 못하여 군향우회가 남해군과 향우사회의 가교역할을 하는 소식통이었으며, 향우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여, 향우회장의 권력이 대단하였다. 요즈음은 지위나 명예가 높은 분들이 향우회 기금도 없으니 회장하기를 기피하고 있으며 결속력이 없어지는 것 같다. 구덕순 군향우회 회장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제일 먼저 독지가들에게 지원받고, 향우들도 십시일반 협찬하여 향우회를 잘 운영해 나가고, 차기회장 추대에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창립 60주년을 맞아서 군향우회가 향후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가?
“향우회가 잘 되려면 정치성이 없어야 한다. 과거 음으로 양으로 향우회가 정치적인 파벌이 생겨 단합되지 않았다. 앞으론 향우들끼리 서로 배려하고 한마음으로 남의 흠담 보담 칭찬을 아끼지 말자. 향우회 회장은 오직 향우회와 고향을 위해서 봉사해야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향우회에 관심이 없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향우회를 살리는 길은 먼저 독지가들에게 기금을 지원받고 향우들도 십시일반 협찬하여 군향우회 기금을 모으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향우님들이 동참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진코스탈은 국내 중소기업 중에서 기술력이나 수출능력, 재정안정성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기업을 일구기까지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말씀해달라.
“기업 운영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정직이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신뢰성은 금전관계 뿐만 아니고 제조업에서 소비자에게 만족하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이익을 너무 추구하면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다. ‘품질최고’로 나아가야한다. 중소기업을 오래 유지하려면 한 품목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개발해야한다. 한 가지 품목으로 오랫동안 하면 전문가가 되고, 전문가가 되면 회사가 발전한다. 우리 속담에 ‘한우물을 파라’란 말처럼 어렵겠지만 인내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야한다. 돈 버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되고 왜 사업을 하느냐 하는 경영철학이 있어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신용이며 고객을 왕이라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대진코스탈의 사업계획이 있으면 간단히 소개해달라.
“내년에 제2공장을 최첨단 스마트공장으로 준공할 계획이다. 45년 중소기업인 대진코스탈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기술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 목표는 지금도 변함없이 실행 중이며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고향 출신의 젊은 기업인 또는 후배 향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 같다. 조언 한 말씀하시면.
“‘판매는 신뢰요, 신뢰는 성의가 만든다.’란 말은 내가 만든 경영철학이다. 즉 신뢰와 신용을 오랫동안 쌓아야 하며 내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한 품목을 한우물 파듯이 해야 하며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 과정은 어렵지만 인내로 극복해야하며 투철한 경영철학을 가져야 성공한다. 무슨 일이든 성공 뒤에는 그럴 만한 이유와 원칙 몇 가지가 반드시 있다. 그 공통점은 사람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 믿음을 얻으면 성공은 그림자처럼 뒤 따라온다. 신용과 신뢰성으로 내가 만든 제품이 고객만족을 가져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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