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마음의 본성 자리
고향은 마음의 본성 자리
  • 남해신문
  • 승인 2019.06.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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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 철명상디자인학교 교장

“고향은 마음의 뿌리이자 최초 생명이 태어난 본래의 자리로 상징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누구라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예외 없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들게 합니다. 
우리가 향수 가득한 고향을 표현할 때면 보통 마을의 특징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 깊이 잠재된 본성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남해가 고향인 필자 역시 어린 시절 마을에서 뛰놀던 아름다운 추억을 기억합니다. 계절적으로도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를 따려 뒷산과 들판을 가로지르고, 여름이면 논 가장자리 덤벙에서 멱을 감든 기억하며,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단풍잎과 과일 열매를 따려 인접한 산을 오르내리던 일, 겨울이면 얼음으로 뒤덮인 논에서 썰매 타던 동심은 자연과 완연히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시야가 확 트인 산야에서 풀을 뜯는 소는 어느덧 우리들의 감각으로도 알아차릴 만큼 감성이 극치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눈 하나 깜빡해도 어떤 신호인지, 음매 하는 소리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소들도 쉴 시간이면 동네 아이들과 자치기도 하고 집에서 가져온 부침개며 삶은 감자나 고구마로 간식을 들며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와 편편한 바위 위에 누워 서로가 팔베개로 의지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중한 추억입니다. 저 넓은 하늘 아래 별들은 얼마나 될까? 하늘보다 큰 것은 무엇이게? ‘엄마 마음이제’ 하며 문제의 답을 담아내며 꿈을 키우든 모습은 요즈음의 어린이가 경험해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살던 고향의 노래 가사처럼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다는 그 마음을 담아낼 고향처럼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고향의 터전이 점점 비워지고 있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빈집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마치 우리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처럼, 고향처럼 따뜻한 고양된 인격과 품격이 사라지는 것처럼 까닭 없이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입니다. 산업화 이후 점점 늘어나는 마을의 빈 집이 가세(家世)의 변이(變異)로 연결된 시대 부산물이라면 이 문명의 전환 속에서 우리가 해결하여야 할 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뿌리는 사람 성(性) 자연한 이치가 섭렵 되어 있는 본래의 자리입니다. 그 뿌리 안에는 하늘과 대지의 시초가 기억되어 있으며, 우주만유와 대자연의 진화와 창조의 전체성도 깃들어져 있고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온유한 성정도 스며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본래의 자리에서 시작할 명분을 터득하지 못한 채 외연의 확장에만 눈을 돌린다면 그 실효성을 거두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세상의 속성이 마치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대세인 듯해도 그렇다고 인간다움의 극치를 이룰 본성을 살펴볼 여유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상징적 의미에서 탄생지로서의 고향은 본성을 잇는 연결고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하겠습니다. 본성적 차원으로 드러날 삶은 따뜻한 성정 그리고 아가페 사랑으로 누구든 내 몸과 같이 여길 수 있는 관용의 품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 삶의 실체에서 ‘본성의 자리가 가장 위대하다’는 이 이치를 소홀히 한 결과가 마을에 빈집을 양산하게 된 원인이라면 이를 해결할 명분 있는 대안(명상, 수련, 인문, 철학, 생태)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안으로 잠재된 고향의 의미와 같은 본성을 찾는 데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문명의 변천이야 시대에 따른 대세라 하여도 마음의 씨앗인 본성마저 사라져 인간성(人間性)이 고갈될 위기를 맞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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