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글만 읽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하얀 얼굴의 남자 '백면랑(白面郞)'이라고도 한다. 
'백면서생'은 중국 송서(宋書:심약心約의역사서歷史書)의 심경지전(沈慶之傳)에서 유래하였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때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武藝)를 닦아 그 기량이 매우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의 유신(遺臣) 손은(孫恩)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는 등 이미 무명(武名)을 크게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將軍)이 되었고,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때는 도읍인 남경(南京)을 지키는 방위책임자로 승진하였다. 
 그 후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카이펑:송나라수도)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하였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文臣)들을 불러놓고 숙적인 북위(北魏)를 공격하기 위한 출병을 논의하는데, 먼저 심경지는 북벌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며 이렇게 말했다. 
"폐하,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밭갈이는 마땅히 농부에게 물어야 하고(경당문노耕當問奴),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계획을 '백면서생'과 도모하면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 
 하지만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묵살하고 문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을 강행했다가 크게 패(敗)하고 말았다.
 심경지의 말에서 유래한 '백면서생'이란 야전(野戰)을 누비며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검은 무관(武官)과 비해, 집안에서 책만 읽어 희고 창백한 얼굴의 선비를 가리키며, 말로만 떠들고 전혀 실전경험이 없는 초년생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 보다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있다. 
무엇이든지 경험해 봐야,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열심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지 전공분야 전문인으로 양성하는데 그치지 말고, 인성(人性)과 도덕성 ․ 사회성을 겸비한 지식인으로 만들어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데, 일대(一大) 교육을 혁신하는 전기(轉機)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결론에 도달하고, 이론(理論)과 실체(實體)를 병행한 인재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전문가집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같은 성어로 얼굴이 하얀 선비, 희고 고운 얼굴에 책만 읽는 사람 ‘백면서랑(白面書郞)’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중국 원(元)나라에서 목화(木花)씨를 붓뚜껑에 가지고 들어와 장인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목화 보급에 기여한 문익점(文益漸)은 고려사(高麗史)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백면서생“으로 평생에 목화재배밖에 모르는 바보? 문익점으로 봐야 할 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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