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미국마을)소설가
이정희(미국마을)소설가

황금사철 담장에 붉은 장미가 수놓는 오월이다. 비단에 꽃을 더한 듯, 눈이 부신다는 말을 이럴 때 하나보다. 자연은 묘한 색채를 가져와 내 사는 앵강 바다와 바래길, 너른 화폭에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 다른 그림을 그려놓고 이후의 일은 보는 이마다 알아서 사유하란다.

파스텔 톤의 푸른 듯 하얀 듯 바느질 없는 선녀의 옷차림 같은 안개가 어디를 잘라 하늘이고 바다라 할지, 쪽빛 강에 떠 있는 조각배와 물새 한 마리, 완벽함과 미완성이 공존하는 앵강, 조금 먼발치에서 보니 그저 환상에 가깝다. 새벽 앵강을 보지 않은 사람과 본 사람의 차이는 뭐라고 말하지 못한다. 자연은 훌륭한 스승이다. 온통 주어진 그림의 소재가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감동을 엮어놓고 정작 화가는 오고 간 길을 알 수가 없다. 걸림 없이 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말이다.

수많은 사물들, 풍경, 인물,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문득문득 시도 때도 없이 화실을 향하게 만드는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고 앵강이 나에게 시킨 것이다. 그런 앵강에 터를 잡은 길현미술관, 참~ 자리 잘 잡았다. 길현미술관의 유화동아리 ‘모네의 화실’도 오월만큼이나 유화향기 가득하다.

지금 ‘모네의 화실’은 유배문학관에서 전시가 한창이다. 모네회원들의 창작이 춤추는 전시로 이달 26일까지 진행된다. 그림의 8할은 선이라 했던가? 이젤 앞에 서면 몹시도 힘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 갖고 있는 정서를 다 표현하기는 턱없이 모자란다. 당분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길을 걷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어쨌거나 생활 속에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작은 파동이 이는 대로, 서투르게 그리는 그림도, 한 줄 선도, 나름의 매력 있다는 위로를 주문하면서 말이다.

일 년의 시간을 기다리며 ‘모네의 화실’ 회원이 됐다. 스물 명 남짓한 모네회원들의 우정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말이 없어도 잘 잡혀진 질서와 애정은 타인들이 추종할 만하다. 멀리 동천리, 미조, 남면, 읍…이번 전시 전야를 보면서 느낀 바가 크다. 만나면 약간 높은음자리의 인사는 오늘하루 있었던 어떤 일들을 잊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밀어 내지 않아도 가는 세월에 우리는 만나야 한다. “한 발 뒤에 서면 더 잘 들리고 한 발 밑에서 보니 더 잘 보인다”는 어느 분의 글이 생각난다. ‘모네의 화실’은 수요일과 금요일, 프랑스 화가 모네의 영향을 받을 준비된, 미술관의 모네들이 상상의 힘과 차 한 잔의 즐거움, 풋풋하고 살가운 교감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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